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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민주화의 산물 직선제, 개혁·선진화 바람에 사라져

중앙선데이 2014.10.26 01:56 398호 14면 지면보기
교육부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2단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대학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는 국·공립 대학은 ‘구조개혁 중점 추진 대학’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직선제를 고수하는 대학에는 지원을 줄이겠다는 선언이었다. 교육부는 앞서 2000년에 교육발전 5개년 계획에 총장 직선제 폐지를 포함시켰지만 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국교련)의 집단 행동 등으로 인해 관철시키지는 못했다. 2006년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며 다시 한번 직선제 폐지를 시도했으나 그때도 교수·교직원의 반발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러한 두 차례의 좌절 끝에 교육부가 꺼내든 ‘지원금 삭감’ 카드는 위력을 발휘했다. 교수 사회에서 “간선으로 총장을 뽑으면 정권이 입맛에 맞지 않는 후보는 임용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며 반발했지만 대학들은 속속 투항을 했고 결국 지난해 6월까지 39개의 모든 국·공립대가 직선제를 포기했다. 국립 K대의 한 교수는 “직선제에 따른 선거 과열 등의 부작용이 있었지만 전체 교수의 투표로 뽑힌 총장 후보는 교육부나 정권이 마음에 안 들어도 임용을 거부하기 힘든 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 총장 선출의 변천 과정

한국의 대학 총장 임용 방식은 정치적 기류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군사정권 수립과 민주화, 1990년대 경제 위기와 이후 사회 전반의 개혁 열풍 등이 영향을 미쳤다.

80년대 대학 총장 앞에는 ‘어용(御用)’이라는 표현이 붙기 일쑤였다. 정권이 입맛대로 앉힌 총장이라는 의미였다. 61년 5·16 이후 줄곧 정권이 총장을 ‘간택’했다. 박정희 정부는 문교부 내 인사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총장을 임명하도록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했다. 이전까지 있었던 총장 임명의 전제 조건인 ‘교수회의 추천’이 사라졌다.

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은 대학 총장 임용 방식에도 혁명적 변화를 불러왔다. 전두환 정부가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수용한 것과 맞물려 대학생과 교수들이 총장 선출 직선제를 요구했다. 그해 12월 목포대가 처음으로 교수들의 직접 선거로 총장을 뽑았다. 이듬해에 전남대·우석대·연세대 등이 뒤를 이었다. 90년대 중반까지 모든 국·공립대와 절반가량의 사립대가 직선제를 택했다.

직선으로 선출된 총장들은 ‘정통성’을 앞세우며 교육 당국 또는 재단과 종종 마찰을 빚었다. 한편으로는 과열된 선거운동과 학내 파벌 형성 등의 부작용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94년 전국 대학 총장들이 모인 하계 세미나에서 직선제 폐지론이 등장했다. 2년 뒤 울산대·계명대가 임명제로의 전환을 결정했고 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 등도 선거 방식 변경에 돌입했다. 교수와 학생의 반발이 심했지만 사립대들은 직선제를 폐지시켜 나갔다. 90년대 후반의 경제난 때문에 가속도가 붙었다. “인기영합형 총장이 아니라 대학을 개혁할 경영자(CEO)형 총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사립대의 총장 선출은 재단이 정한 후보를 교수들이 인준하는 방식(연세대)이나 교수회의 찬반 투표를 통과한 복수의 후보 중에서 재단이 선택하는 방식(고려대) 등으로 변경됐다. 교수들의 결속력이 강한 국·공립대에서는 직선제가 그대로 유지됐지만 교육부의 ‘선진화 방안’에 따라 결국 2012년 이후 간선제로 속속 바뀌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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