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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떼창 응원에 들썩 … 영국 축구장은 ‘록 그라운드’

중앙선데이 2014.10.26 02:00 398호 15면 지면보기
1 밴드 오아시스의 ‘Definitely Maybe’ 음반 표지.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했던 로드니 마시 선수 사진을 사용했다. 2 테이크 닷의 멤버인 로비 윌리엄스의 2000년 작 ‘Sing When You’re Winning’ 음반 표지. 3 에릭 클랩턴은 웨스트 브로미치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음반 ‘Backless’ 표지 사진을 찍었다. 4 프로구단 유소년팀에서 테스트를 받았던 축구 매니어 로드 스튜어트. 5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는 울버햄프턴의 열혈 팬. 1988년 음반 ‘Now and Zen’ 음반 표지에는 울버햄프턴의 상징인 늑대 그림이 있다.
영국에서 축구의 인기는 로큰롤만큼이나 뜨겁다. 축구 종주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리그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소속 20개 구단은 물론 그 하부 리그 소속 구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축구팀들은 로큰롤과 얽힌 흥미로운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⑤ 축구와 로큰롤

EPL이 자랑하는 두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이하 맨유)와 맨체스터 시티(Manchester City, 이하 맨시티)의 홈인 맨체스터에는 흔히 두 가지 색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빨간색과 파란색이다. 정확하게는 맨유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맨시티를 상징하는 파란색이다. EPL 최고 라이벌의 색깔론은 로큰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퍼거슨 등장 응원가, 차트 1위 오르기도
관록의 영국 록밴드 스테이터스 쿼오(Status Quo)는 1988년 ‘Burning Bridges’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맨유 구단은 이 곡을 토대로 가사를 고쳐 94년 구단 응원곡인 ‘Come On Your Reds’를 발표해 영국 차트 1위에까지 오른다. 가사에는 당시 맨유 주축 선수들과 함께 감독 이름도 언급되는데, 그는 바로 최근에야 은퇴한 앨릭스 퍼거슨이니 그가 얼마나 오래 맨유를 지휘했는지는 로큰롤을 통해서도 금세 확인된다.

맨유를 대표하는 레전드이자 60년대 맨유 우승의 주역이었던 조지 베스트는 지금도 역사상 최정상급 축구선수로 기록되는데,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패션 감각 덕분에 데이비드 베컴 이전에 특급 스타 대우를 받은 원조 연예인급 선수였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 중 하나인 더 킹크스(The Kinks)는 66년 ‘패션의 헌신적인 추종자(Dedicated Follower of Fashion)’라는 곡을 발표한다. 당시 ‘스윙잉 런던’(8월 31일자 ① 런던 소호 편 참고)의 활기찬 패션 분위기를 그린 곡인데, 전설은 이 곡에 영감을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조지 베스트라고 전한다. 맨유 홈경기장인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 내에 있는 박물관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이 곡의 악보와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맨체스터 출신의 록밴드 조이 디비전을 이끈 이언 커티스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10월 12일자 ④ 맨체스터, 매드체스터! 참고)할 때까지 맨시티 팬이었다. 앤턴 코빈 감독은 2007년작 영화 ‘컨트롤’에서 컨트롤할 수 없었던 한 젊은 아티스트 커티스의 삶을 흑백 영상에 생생하게 묘사했다. 영화에는 커티스가 공연 중 만난 벨기에 출신의 여인 아닉 오노헤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오노헤가 “무슨 색 좋아하느냐”고 묻자 커티스는 “블루, 맨시티 블루”라고 대답한다. 오노헤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묻자 커티스는 “맨시티는 축구 클럽이고 그들은 파란색을 입는다”고 설명해준다.

공교롭게도 맨시티의 영원한 라이벌 맨유 팬들은 조이 디비전의 대표곡 ‘Love Will Tear Us Apart’를 개사해 소속 선수 라이언 긱스가 은퇴할 때까지 응원가 ‘Giggs Will Tear You Apart’를 불렀다. 이 장면을 보고 하늘에서 커티스는 과연 웃었을까 분통해했을까.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 역시 광적인 맨시티 팬이다. 구단이 새 유니폼을 발표했을 때 빈센트 콤파니 선수 등과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그들이 94년 발표한 ‘Definitely Maybe’ 음반 표지에는 맨시티에서 활약했던 로드니 마시 선수 사진이 사용되기도 했다.

첼시(Chelsea) 구단은 자신들을 응원하는 유명 인사들을 홈페이지에 소개할 정도로 팬 층이 두텁다. 유명 인사도 영화나 정치인 등 부문별로 따로 구분해 소개한다. 음악 부문 팬에는 원조 펑크록 섹스 피스톨스에서 원조 하드록 레드 제플린의 멤버까지 다양하다. 캐나다 출신의 로커 브라이언 애덤스도 광적인 첼시 팬이다. 영국 출신도 아닌 애덤스는 그의 96년 음반 ‘18 Til I Die’에 수록된 ‘We’re Gonna Win’을 첼시에 헌정했다.

더 킹크스의 리더 레이 데이비스는 런던 출신으로 청소년 시절 학교 축구선수로도 활동한 골수 아스널(Arsenal) 팬이다. 현재 홈경기장으로 쓰는 에미리트 경기장이 완공된 2006년 이전까지 아스널은 거의 한 세기 동안 하이버리(Highbury) 경기장을 사용했는데, 아트 데코 양식의 멋진 하이버리가 문 닫고 헐린 이후 레이 데이비스는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건물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아이언 메이든의 베이시스트 스티브 해리스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West Ham United)의 유소년 축구팀 출신으로 축구에도 큰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로큰롤에 눈을 뜬 이후 축구공 대신 기타를 들었다. 해리스는 공연 때 종종 웨스트 햄 로고가 붙은 베이스 기타를 메고 나오기도 한다.

영국 개러지 록밴드 더 리버틴스의 보컬 피트 도허티는 어려서부터 퀸스파크 레인저스(Queens Park Rangers, QPR)의 열혈 팬으로 팬 잡지인 ‘All Quiet on the Western Avenue’를 발행하기도 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인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의 내부 모습. 경기장 내부에 있는 박물관에는 ‘맨유의 전설’로 꼽히는 조지 베스트 선수의 전시 코너가 있다. [조현진]
첼시 기념매장과 구장. 경기가 없어도 늘 찾는 관광객들로 넘친다. [조현진]
로드 스튜어트, 관객에게 축구공 선물
록스타들이 투자한 축구 구단도 제법 있다. 엘턴 존은 76년 왓퍼드(Watford)의 소유주가 되면서 클럽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후 지분 변동 과정을 거치며 지금은 소주주이자 명예 종신 대표가 됐다. 그는 왓퍼드 홈경기장인 비커리지 로드에서 종종 공연도 했는데 2000년대 초 구단 재무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 공연 수익금을 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테이크 댓의 로비 윌리엄스는 2006년 포트 베일(Port Vale) 축구단 주식 24만 파운드어치를 취득하면서 대주주에 오른다. 로비는 인기 축구 게임인 ‘FIFA 2000’에 포트 베일 구단이 포함된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곡 ‘It’s Only Us’ 사용을 승인하기도 했다. 축구를 소재로 한 표지로도 유명한 그의 2000년작 ‘Sing When You’re Winning’ 음반 제목은 포트 베일 구단의 응원 구호이기도 하다.

호주의 대표 록밴드 AC/DC의 보컬 브라이언 존슨은 영국 출신으로 뉴캐슬(New Castle United)의 팬이다. 뉴캐슬은 80년대에 존슨에게 클럽에 투자할 것을 제안했으나 존슨은 이를 거절하고 순수한 팬으로만 남았다.

88년 9월 22일 필자가 로드 스튜어트 공연을 보는 중이었다. 그가 갑자기 축구공을 들고 나오더니 1만3000여 관객을 향해 공을 찼다. 관객에게 축구공이라는 깜짝 선물을 준 로드 스튜어트는 한때 프로구단 유소년팀에서 테스트를 받았을 정도로 축구 실력도 뛰어나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EPL보다는 스코틀랜드 리그의 셀틱(Celtic FC)을 응원하는 스튜어트는 78년 히트곡 ‘You’re In My Heart’에서 ‘당신은 셀틱…내가 본 역대 최고의 팀(You’re Celtic…You’re the best team that I’ve ever seen)’이라는 가사를 남겼다.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West Bromwich Albion FC)의 열혈 팬인 에릭 클랩턴은 그의 78년 음반 ‘Backless’에서 웨스트 브로미치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소파에 앉아 기타를 치는 사진을 표지로 남겼다.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는 자신이 5살 때 울버햄프턴(Wolverhampton Wanderers FC) 경기를 보러 갔는데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빌리 라이트 선수가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본 뒤 평생 팬이 됐다고 밝혔다. 그의 88년 음반 ‘Now and Zen’ 표지에는 늑대 그림이 있는데 늑대(wolves)가 구단 애칭인 울버햄프턴에 대한 경의라고 축구팬들은 믿는다. 플랜트는 2009년부터 이 구단의 부사장직도 맡고 있다.

록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를 이끈 제프 린은 골수 버밍엄 시티(Birmingham City) 팬인데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들의 ‘Mr. Blue Sky’가 항상 연주된다.

퀸 노래는 모든 종목서 응원가로 애창
로큰롤 세계에 리버풀(Liverpool FC)의 공식 응원가인 ‘You’ll Never Walk Alone’보다 더 유명한 응원가는 없다.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는 핑크 플로이드가 71년 발표한 ‘Meddle’ 음반에 이 응원가 일부가 실린 것이 계기다. 원곡은 뮤지컬 삽입곡이었는데 리버풀 출신의 록밴드 ‘게리 앤드 더 페이스메이커스’가 63년 다시 부르면서 인기를 끌자 콥(Kop, 리버풀 경기장의 한 관중석 이름이자 서포터스를 총칭함)들이 경기장에서 부르기 시작하면서 공식 응원가가 됐다. 경기장을 찾았던 핑크 플로이드가 열성적인 콥의 떼창 광경에 감동받아 경기장에서 이를 직접 녹음해 ‘Fearless’ 곡 후반부에 사용한 것이다.

퀸의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s’는 종목을 떠나 전 세계 스포츠 경기장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사랑받는 곡이다. 밴드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자신들의 공연 앙코르 때 관객들이 ‘You’ll Never Walk Alone’을 불러준 경험에 너무 깊은 감동을 받고 밴드가 이 곡들을 쓰게 됐다고 회고했다.

사실 아무도 혼자서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다. 로큰롤의 제왕에는 샘 필립스가 있었고, 존 레넌에게는 폴 매카트니가 있었다. 그리고 축구라는 스포츠에는 로큰롤이라는 음악이 늘 곁에 있었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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