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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고수에게 듣는다] 한국 투자자의 대만 기업 탐방기

중앙선데이 2014.10.26 02:18 398호 18면 지면보기
지난달 나흘간 대만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새롭게 출범한 해외펀드에 편입할 종목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가오슝에서 시작해 타이중을 거쳐 타이베이까지 이동하며 각 지역에 위치한 12개의 기업을 탐방하는 일정이었다. 최근 한국 외에도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을 누비며 다양한 기업들과 미팅을 해 본 터라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무뎌졌을 법도 한데 대만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고 귀국했다.

배당이 적어 죄송합니다
서버용 슬라이드를 만드는 업체와 미팅하며 있었던 일이다. IR(Investor Relation) 담당자가 아주 별난 인물이었다. 특별한 제품 경쟁력이 눈에 띄지 않는 반면 실적이 꾸준히 좋아지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 질문을 던지면 “우리 회사에 의심을 가지고 주식을 사지 않았던 사람들은 다 돈을 못 벌었다”는 식의 우격다짐 대답만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는 틀렸다 싶어 마지막으로 배당정책이나 물어보자는 심산으로 질문을 던졌다.

“배당성향(연간 순이익 중 배당으로 주주에게 지급되는 비율)이 50%인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배당이 적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성장하는 회사라 내부 유보를 일정 부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갑자기 저자세로 돌변한 것도 의외였지만 가장 놀란 점은 순이익의 절반을 주는데도 배당이 적다고 여기는 데 있었다. 필자는 이렇게 많은 배당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는 의도였다.

일러스트 강일구
실제로 대부분의 대만 기업은 높은 배당성향이 있다. 적정 수준을 초과하는 유보금에 대해 추가적인 법인세를 물리는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업의 가장 큰 의무가 주주에게 배당을 최대한 지급하는 것이라 여긴다. 대만 기업들과의 연이은 미팅은 주주정책을 중시하는 필자조차 한국 기업들의 짜디짠 배당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주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찾아 먹지 못하고도 찍소리 못하는 한국 투자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에는 삼성·현대자동차·LG처럼 세계에 내로라할 만한 대기업 집단이 별로 없다. 본토에서 건너와 소수의 인력으로 대만을 통치할 수밖에 없었던 장제스(蔣介石)가 토착민에게 부가 쏠리는 걸 막기 위해 토착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을 막았다는 탓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필자에게도 대만은 중소기업의 천국이란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기업 탐방 후 이런 편견은 깨졌다.

우선 대만이 강하다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삼성에 필적할 만한 세트업체는 없지만 경쟁력과 규모를 동시에 갖춘 부품회사들이 버티고 있었다. 예컨대 스마트폰에 장착하는 렌즈만 만들어 시가총액이 10조원에 이르는 부품회사가 있는가 하면 노트북과 스마트폰용 메탈 케이스를 제조해 7조원의 시장 가치를 인정받는 회사도 있다.

놀라운 점은 계열사 납품이 아닌 오직 기술 개발과 글로벌 시장 개척으로만 이뤄낸 성과라는 것이다. 한국에선 세트업체 계열사가 아닌 이상 2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부품회사는 한 곳도 없다. 실제로 이들과 미팅하면서 기술에서 뒤처지면 물러설 곳이 없다는 비장함과 이 분야에서만큼은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 창업자의 기업가 정신으로 출발해 성장한 곳이다.

중국은 수출 주도에서 내수 소비로의 구조개혁을 진행 중에 있다. 소비재보다 화학·철강 등 중간재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 기업에는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사실 한국 투자자들이 답답한 부분은 오리온·아모레·쿠쿠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 주식시장에서 중국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한국 브랜드를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기업가 정신, 스케일이 있더라
하지만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한 다수의 대만 소비재 기업들은 핵심 제품군에서 선두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본토의 라면·쌀과자·할인점·제과점·자전거·콘택트렌즈 분야 1위는 대만 기업들이다. 충성 고객의 반복 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좋은 사업이자 성장이 뻔히 보이는 분야들이다. 이들은 당연히 중국뿐 아니라 대만에도 기반이 있어 단일 아이템에도 상당히 큰 사이즈를 자랑한다. 편안한 내수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본토 진출에 승부수를 던진 기업가 정신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결국 기업들에 달려 있다. 한국 기업들이 좀 더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과 주주 친화적인 마인드를 갖추게 되길 희망한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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