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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제 믿음이 이상한가요?

중앙일보 2014.10.26 00:15



[매거진M] 색다른 종교영화 '거룩한 소녀 마리아'















‘거룩한 소녀 마리아’(영제 stations of the cross, 10월 23일 개봉, 디트리히 브뤼게만 감독)는 여러모로 독특한 영화다. 일단 형식부터 그렇다. 전체를 14개 챕터로 나눠 각 챕터를 온전히 롱테이크로 찍었다. 즉 영화 전체가 단 14개의 컷으로 이뤄져 있는 셈이다. 한 컷의 길이는 최장 15분이 넘는다. 소재와 시각도 그렇다. 언뜻 종교를 비판하는 듯 하면서도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애정 어린 시각으로 숙고하는 시선이 독특하다. 독일 감독 디트리히 브뤼게만(38)은 이 영화로 올해 초 베를린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와 나눈 서면 인터뷰와 함께 이 영화의 특별함을 소개한다.



주인공 마리아(레아 반 아켄)는 열네 살 소녀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는 늘 고민한다.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하는지, 예수님을 닮은 삶은 어떤 것인지. 마리아는 이상한 행동을 일삼으며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려고 한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 코트를 벗어버리고 반소매 차림으로 언덕 길을 오르는 것도 그래서다. 추위를 감내하는 일종의 ‘희생’을 통해, 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든 하느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면 일부러 얼굴을 찡그린다. 웃어서 예쁘게 보이려는 마음이 가식적이고 음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마리아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광신도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면서 도대체 어떤 계기로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살핀다. 극 초반 마리아는 지극히 평범한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반 남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기곤 그가 데이트 신청을 하자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엄마에게 외출 허락을 받기 위해 여자친구와 만나는 거라고 거짓말까지 한다.



하지만 마리아 주변의 어른들은 사춘기 소녀의 설렘을 ‘정상’으로 보지 않는다. ‘죄’라고 비난할 뿐이다. 마리아가 다니는 성당의 웨버 신부(플로리안 슈테터)는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지는 건 ‘간음과 같다’며 몰아세운다. 마리아의 엄마는 마리아가 리드미컬한 찬송가를 듣는 것까지 죄악시한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이 음란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사람들 곁에서 마리아는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 마리아는 결국 남자친구도, 음악도 포기한다. 그리고는 믿음을 위해 누구도 말리지 못할 행동까지 자처할 만큼 변해간다.



이쯤 되면 이 영화가 주일학교에서 단체 관람에 나설 성격의 종교영화는 아니란 걸 눈치챘을 것이다. 오히려 ‘신의 소녀들’(2012,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이나 ‘막달레나 시스터즈’(2002, 피터 뮬란 감독) 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신의 소녀들’은 루마니아의 수도원 신부가 규율을 따르지 않는 소녀에게 퇴마 의식을 거행하는 이야기였고, ‘막달레나 시스터즈’는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 여성들을 감금하고 엄격한 교리를 강요한 실제 사건을 다뤘다. 이를 통해 맹목적 순종을 강요하는 종교의 모습을 비판했다.



한데 이와 달리 ‘거룩한 소녀 마리아’는 모든 일들이 매우 일상적인 환경에서 벌어진다. 마리아에게 엄격한 신앙을 강조하는 웨버 신부는 사이비 교주도, 어느 이상한 수도원의 미치광이 신부도 아니다. 그저 지역 성당의 주임 신부다. 마리아의 어머니 또한 평범한 직장인이다. 신앙에 대한 태도만 빼면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평범한 사람들인 셈이다. 마리아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의 죄악과 맞서 자신의 믿음을 밀어붙이는 공간도 학교나 병원과 같은 곳이다.



마리아가 10대 소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감독은 “주인공을 모든 것에 의존적인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은 언뜻 마리아의 선택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은 이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답했다. “만일 말해버리면 그야말로 대단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대신 “앞서 말했듯, 마리아는 아직 완전한 어른이 아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독립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엔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리아가 예수가 걸었던 길을 따랐다는 점에서 말이다”라고 밝혔다. 이 만만찮은 영화를 내놓은 감독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는 “내 종교는 영화”라고 농담조로 답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내게 종교는 애증의 대상이다. 한편으로는 현재 세상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일이 다 종교 때문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초월적 존재가 세상을 감싸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영성을 존중한다.”



디트리히 브뤼게만 감독 “롱테이크의 매력은 관객을 속일 수 없다는 것”



‘거룩한 소녀 마리아’는 디트리히 브뤼게만 감독의 이력에서도 독특한 영화다. 일례로 직전의 ‘무브’(2012)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은 코미디였다. 한국에 그의 작품이 개봉하는 건 네 번째 장편 연출작인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 14개 항목으로 구성된 가톨릭 기도 의식 ‘십자가의 길’을 본딴 형식이 독특하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가톨릭 근본주의자 공동체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이상한 경험이었지만 그것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2010년 겨울 몹시 추운 어느 날, ‘십자가의 길’이 갑자기 머리를 쳤다. 그때 비로소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십자가의 길’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도들은 항상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걸어야만 한다고들 말한다. 마리아는 그렇게 하다가 완전히 극단으로 치닫게 되지만.”





- 각 챕터를 롱테이크, 그것도 거의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로 찍었는데.



“주로 코미디였던 예전 작품들에서도 사용했던 기법이다. 내가 롱테이크에 매료되는 이유는 매번 마찬가지다. 작용과 반작용, 원인과 결과가 모두 한 프레임 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롱테이크는 실시간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은 그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장면을 자를 수 없기 때문에 관객을 속일 수도 없다. 진실을 찾도록 추궁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롱테이크의 매력이다.”





- 왜 14세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았나.



“10대라는 건 최고로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시기다. 어른이 된 척하지만,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 특히 엄격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다면 어떻게 해야 부모가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갖고 알아주는지, 그것만 생각할 거다. 마리아 역에 레아 반 아켄을 캐스팅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영화를 찍으려면 알다시피 수천 명의 스크린 테스트를 진행한다. 당연히 그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첫 날 레아가 나타났다. 완벽했다. 그래서 같이 일하게 됐다.”





- 당신이 생각하는 참된 믿음 또는 참된 종교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매우 현명한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복음 7장 16절)’고. 종교란 사람에게서 선한 부분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럴 수 있다면 참된 종교다.”





- 차기작은.



“곧 촬영에 들어간다. 독일의 네오 나치에 대한 코미디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은 영화 속 장면



가톨릭 기도 의식인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일어난 열네 개의 사건을 차례로 묵상하는 내용이다. ‘거룩한 소녀 마리아’는 각 챕터에 ‘십자가의 길’의 각 항목을 제목으로 붙였다. 제목만 아니라 몇몇 장면 역시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제1장 예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다 마리아가 성경 공부를 하는 장면이다. 긴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신부의 말에 집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과 비슷한 구도다. 처형 직전, 예수가 제자들과 가졌던 식사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사진 2)



제2장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다 가족들과 함께 마리아가 야외 나들이를 간다. 부모와 두 동생과 보모에 앞서 마리아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언덕 위를 힘 없이 올라가는 모습이 비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던 것을 연상시킨다. (사진 3)



제10장 예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시다 실신한 마리아는 병원으로 실려간다. 체온을 재고 진찰받기 위해 옷을 벗고 의사 앞에 앉은 그의 모습이 유독 처량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병사들이 그의 옷을 벗긴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 4)





글=윤지원 매거진M 기자 knjes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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