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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디자인 카드에 담긴 이야기

온라인 중앙일보 2014.10.26 00:01



[레몬트리] 비핸드카드 박영춘 회장과 세 자녀의 이야기
2014년 오늘의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 브랜드를 찾아서





























1970년, 최초의 디자인 카드를 만들다

1980~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바른손’이라는 이름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떨리는 마음을 적어 내려가던 연애편지의 편지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연말 인사를 전하던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 정성스레 고르던 카드의 모퉁이에는 ‘바른손’이란 로고가 당연스레 찍혀 있었다. 지금이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져 취향에 맞는 물건을 찾는 이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먹고살기 힘들던 때. 박영춘 회장이 성공 확신이 전혀 없는 카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우연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초 을지로에서 조각 기계 한 대를 가지고 형압이나 금박을 찍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 매장 이름이 바른손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카드를 만드는 업체에서 금박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합디다. 그래서 정성 들여 작업을 해 보낸 뒤 완성본 샘플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는데, 그 사장이 싹 무시하면서 ‘당신이 카드 봐서 무얼 할꺼냐’고 하대요. 그래 좋다, 어디 한번 내가 더 예쁜 카드를 만들어 보여주마. 이렇게 이를 갈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바로 연말 연하장을 만들기 시작했지요.(웃음)” 카드의 제작 과정은 정확히 모르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유명했고 손재주도 좋다고 일컫던 이였다. 게다가 시장조사를 해보니 시중에는 풍속도, 미인도 등 동양화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온 연하장이 태반. 이러한 카드 시장을 본 뒤 디자인 개념을 가미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확신이 섰고, 마패처럼 한국적이면서 기운도 좋은 물건을 주제로 직접 그림을 그리게 됐다.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창의적 디자인으로 승부해야겠단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이른 봄에 카드 디자인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서 인쇄소에 샘플 북을 돌렸습니다. 그들에게 선호도 조사를 해서 1등, 2등으로 나온 카드를

많이 찍기로 했죠. 첫해에 카드 12종을 만들었는데, 당시 대한민국에서 연하장 제일 많이 판다는 회사가 100만 장을 팔던 때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만든 카드는 입소문이 나면서 첫해부터 130만, 140만이 나가는 바람에 업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샘플 북을 돌리면 인쇄소가 도매업자가 되어 소매점들의 주문을 받던 때인데도 을지로 작은 건물 3층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은 카드를 사겠다고 직접 찾아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 가수 앨범 발매일의 풍경처럼 계단부터 길거리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니 새로운 연하장의 반향이 이토록 컸던 것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카드 사업을 시작했고 바른손은 3~4년 새 다른 업체들을 제패하고 업계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실크 재질, 레이스 무늬를 볼록 튀어나오게 한 입체적 형압 카드, 카드처럼 접히는 최초의 청첩장, 디자인을 가미한 편지지와 봉투 제작 등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물건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디자인의 열정을 배우는 회사

“당시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요, 을지로 작은 가게에 직원이 늘어나서 몇 년에 한 번씩 사무실을 옮겨야 했어요. 연말이면 카드가 너무 많이 팔리는데 현금으로 대금을 받으니 직원들이 우리 집으로 와 밤을 새우며 자루 속의 돈을 셈해야 했고요.(웃음)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디자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도 인상적이었죠. 디자이너들을 많이 뽑았고, 지원을 해주니 1980년대 바른손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 하는 회사로 손꼽혔거든요.” 박영춘 회장의 맏딸이자 현재 그림닷컴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소연 씨의 설명은 바른손이 팬시 문구를 시작하던 때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박영춘 회장은 일본 출장을 다녀온 뒤 우리나라에도 디자인 좋은 문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최초로 국산 캐릭터를 개발해서 ‘바른손 팬시’를 시작했고, 직원 300명인 회사에 100명을 디자이너로 채용할 만큼 파격적으로 디자인을 중시했다. 노트 내지에 글을 쓰는 칸도 간격을 달리해서 여러 디자인으로 내놓았으니, 다양한 커버 디자인이야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터. 거기에 그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풍족하게, 곱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더하고 싶었다. “편지지나 노트 커버에 정직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강조하는 글귀를 넣었답니다. 글귀 하나, 디자인 하나까지 다 확인하셨고요.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서 사람을 생각하며 제품을 만드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온 다음부터 박영춘 회장과 함께 일했다는 박소연 대표는 이 밖에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여럿 덧붙인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세계 최고가 되어야 한다며 집중해서 일하는 모습에서 열정을 배웠고, 환경이 좋아야 창의력이 생긴다며 사무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는 데서 디자인 경영이 왜 중요한지를 몸소 익혔다고. 보통 손으로 디자인을 하던 1990년대 초, 그의 회사 디자이너들은 미국에서 들여온 따끈따끈한 매킨토시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걸 배우기도 했단다. 자신이 만드는 제품뿐 아니라 우리 삶과 관련한 다양한 물건에 관심을 가지던 이. 을지로 작은 가게를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디자인 회사로 일군 그는 자금이 어려울 때에도 은행에 가서 아쉬운 소리 하는 것조차 싫어하던 꼿꼿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저 실력으로 승부하는 근성 또한 그런 아버지에게 배울 수 있는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카드를 넘어선 미래를 보다

“세계를 누비며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누구보다 총명하고 열정적이시던 아버지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가슴 아픈 일입니다. 3년 전쯤 여기 강원도에 요양을 할 요량으로 집을 지었는데, 보시는 것처럼 집의 외관부터 정원에 심은 꽃의 높낮이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기는 게 없으셨어요. 여전히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고, 새로운 걸 해라, 국제적 마인드를 키우라는 조언도 빼놓지 않으시죠.”



경제 뉴스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1998년 외환 위기가 터졌을 때, 탄탄한 흑자 기업들도 부도를 맞았는데 바른손 또한 그중 하나였다. 그 때문에 문구 사업 부문은 매각했고, 현재는 비핸즈(B Hands)로 사명을 바꾸어 온라인을 기반으로 청첩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진출한 상황. 이 또한 당시에는 없던 사업 모델이었으나 박영춘 회장은 장래성을 보았다. “나는 워낙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회사가 카드처럼 접히는 요즘 식 청첩장을 최초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으니 우리도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청첩장을 주문받기도 하고, 온라인 청첩장 자체도 판매해야겠다고요. 또한 국내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청첩장 카드를 수출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상해에 청첩장 생산 공장을 지었고, 카드에 관한 모든 공정이 원스톱으로 가능한 곳으로 만들었다.



현재는 둘째인 박이식 부회장이 상해 공장 관련 업무는 물론 중국 내수 판매, 일본 수출까지 챙기고 있으니, 국내 시장에 국한하지 않은 행보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온라인 청첩장 시장이 형성되고 후발 주자들이 여럿 생겨났으나, 비핸즈는 현재 시장점유율 70%를 유지하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비핸즈카드 홈페이지를 열어보지 않는 예비 신혼부부가 없을 정도인데, 45년 전통의 회사가 여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주는 게 주요한 이유.



비핸즈카드를 책임지고 있는 이이자 삼 남매의 막내이기도 한 박정식 부회장은 앞으로 핸드메이드 요소를 가미한 카드가 많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사실 최근 주변의 젊은 커플들만 보아도 직접 카드를 건네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툭 청첩장을 전송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이런 추세에 핸드메이드 카드라니, 이유가 궁금했다. “미국에 진출해보니 결혼 소식만큼은 카드에 손글씨로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여전히 많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카드를 직접 건네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대신 정성과 손맛이 가미된 맞춤형 디자인을 많이 개발해야 직접 카드를 주는 기쁨을 느낄 수 있겠지요.”



비핸즈의 새로운 비전을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앞서 이야기한 그림닷컴으로 온라인 그림 쇼핑몰이다. 비핸즈 대표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국내에서 불모지인 아트 프린트 분야에 도전한 박소연 대표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조언은 언제나 그랬듯 패러다임의 전복을 꿈꾸라는 것. “언제까지 돈 있는 사람만 그림을 즐기는 시대가 계속되겠습니까. 과거 궁중음악도 왕이나 귀족들만 듣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서 그 소리를 녹음하고 대중이 함께 즐기는 시대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림 또한 원작은 작가가 소장하고 그에 근접하게 재현한 아트 프린트를 대중이 소유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원작은 유작으로 남겨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작가는 음악처럼 저작권료를 받는 거지요.”



비핸즈는 지난 45년간 축적된 인쇄 노하우와 마치 유화처럼 질감 있는 그림을 만드는 ‘마티프린팅’이라는 특허 인쇄 기술까지 가지고 있어 이는 전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분명 고매한 미술계에서 들으면 소스라치게 놀랄 이야기이고, 찬반이 분분할 의견이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팔순을 앞둔 이가 전하는 판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그 어떤 청년의 생각보다 젊고 신선하다는 점이었다.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과 비교하자면 바른손은 분명 작은 회사였고 현재도 그러하다. 그러나 지난 45년간 우리에게 바른손이 있었기에 카드 산업군을 로컬 브랜드로 굳건히 지킬 수 있었고, 우리의 이름으로 팬시 문구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었다. 헬로키티를 만든 일본의 그 유명한 팬시 브랜드 산리오가 아시아에서 한국에 제일 늦게, 그것도 IMF 이후에야 정식 진출한 게 그 방증이 아니겠는가. 무조건 신토불이를 외칠 수 없는 글로벌 시대임은 알지만, 디자인 산업군에서도 멋진 우리 브랜드 하나쯤은 남았으면 한다. 세계 1등 아트 프린트 회사를 만들라는 그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응원케 된 이유다.







[사진설명]

1. 1980년대 연하장에는 88 서울 올림픽 같은 시대적 배경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2. 1986년 아시안게임을 기념하여 디자인한 연하장

3,4,5. 바른손카드에서 만든 1970년대 카드

6,7. 글씨나 무늬가 볼록하게 올라오는 형압 장식의 카드들은 1970~80년대 바른손카드에서 최초로 시도한 기법

8. 가수 장윤정과 아나운서 도경완이 결혼할 때 특별 주문 제작한 청첩장과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가수 이주노가 주문한 맞춤형 청첩장





글=홍주희 레몬트리 기자, 사진=전택수(JEO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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