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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별 볼 일 있는 날] 배우 아닌 사람 같은, 연기 아닌 일상 같은 … 정유미

중앙일보 2014.10.22 01:25 종합 16면 지면보기


최근 종영한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 TV에 넘쳐나는 사랑 얘기를 다뤘지만, 좀 달랐다. 재벌남과 캔디의 로맨스 판타지 아닌, 평범한 남녀의 엎치락뒤치락 연애 과정을 리얼하게 그렸다. 특히 요즘 트렌드인 로맨스물의 장르혼합 없이 로맨스 자체에 집중했다. 시청률은 그닥 높지 않았지만 젊은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저 달콤한 대리연애 상품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연애의 민낯을 보여준 ‘리얼 드라마’였다.



 그 중심에 배우 정유미(31)가 있다. 헤어진 남자친구(에릭)와 재회한 후, 현재 애인(성준) 사이에서 흔들리는 가구 디자이너 한여름 역을 절묘하게 해냈다. 전작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낸 에릭, 결혼적령기 훈남 역으로 인기 절정인 성준의 연기도 돋보였지만 정유미의 역할이 컸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정유미표 일상 연기가 빛을 발했다.



 실제 에릭은 한 인터뷰에서 “(정유미는) 내 연기를 반사해주는 거울 같았다. 카메라가 자기를 비추지 않아도 내가 감정 연기를 하거나 대사를 하면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렸다. 극에 몰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에릭은 또 “정유미에게 모질게 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실제로 마음이 아팠다. (정유미가) 순수하고 여린 성격이라, 못되게 구는 연기를 하면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고 했다. 화려하기보다 소박하고, 순수해 보이는 정유미의 TV속 이미지가 실제 그녀와도 닮은 꼴인 모양이다. 물론 그 착하고 여리게만 보이는 이미지 뒤에 어딘지 강한 심지와 들풀 같은 생명력을 감추고 있다는 게 그녀의 매력이기도 하다.(정유미의 당돌함을 말해주는 일화 한 토막. 지방의 평범한 재수생이던 정유미는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이렇게는 안될 것 같다. 서울 간다”며 밥상머리를 박차고 나와 서울로 올라 왔고, 그 해 서울예대 영화과에 입학했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정유미와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이 정유미에 대한 실례다. 2004년 독립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데뷔한 후 10년. 꽤나 인상적이고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자랑한다. 주연을 맡은 ‘우리 선희’ 등 홍상수 감독 영화 6편에 출연했다. 김태용(‘가족의 탄생’), 정지우(‘사랑니’), 정윤철(‘좋지 아니한가’), 정성일(‘카페 느와르’) 감독과도 호흡을 맞췄다. 예술영화 감독, 지성파 감독들이 각별히 사랑하는 배우라 할 만하다. 물론 비주류 예술영화 취향이 전부는 아니다. ‘연애의 발견’에서 재회한 에릭과 2007년 MBC 드라마 ‘케세라세라’에 함께 출연했다. 지난해 KBS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는 계약직의 애환을 그려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연애의 발견’은 시즌3까지 방송된 tvN ‘로맨스가 필요해’의 정현정 작가의 작품이다.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2의 정유미(주열매 역), 시즌3의 성준을 한 자리에 모아, 일종의 연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유미가 연기한 한여름과 주열매는, 모두 자의식 강하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며 연애를 주도하는 요즘 여성상을 대변한다. 삼각관계가 이어지며 왔다갔다 흔들리지만 그런 흔들림이 솔직함으로 받아들여지며 공감을 샀다. 요즘 유행하는 쿨한 캐릭터지만 부러 쿨함을 연출하지 않고, 극중 리얼리티와 상관없이 패션 화보에서 툭 튀어나온 듯 스타일을 과시하지도 않아, 일상을 사는 동시대 여성의 평범함을 구현하는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KBS ‘연애의 발견’의 성준·정유미·에릭(위부터).
 극중 에릭과 재회한 후 계속 등장하는 5년 전 과거 장면의 정유미는 현재 모습과 다르다. 그저 머리나 의상으로 과거를 연출하는 게 아니라 미묘한 표정, 눈빛, 몸짓 하나로 인물의 ‘역사’를 연기했다. 특히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에릭에게 첫 눈에 반하는 장면이나, 돌연 헤어지자고 선언하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가히 사실적인 사랑 연기의 교본이라 할 만하다. 바로 내 연애를 보는 듯했다는 시청소감이 이어졌다.



 어느덧 TV드라마를 보면서 배우가 연기하는 극중 인물보다 배우의 옷, 몸, 매력을 보고 거기에 집중하는 데 익숙해진 시대다. 정유미는 배우의 매력을 탐하는 시청자의 시선을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캐릭터의 마음에 돌리게 한다. 누구나 가진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마음 말이다. 그래서 시청자로 하여금, 그 캐릭터에 절로 마음을 열고, 절로 캐릭터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렇게 연기의 리얼리티를 선보인다. TV 속 정유미는 유명 배우나 스타가 아니라 그냥 사람처럼 보인다. 이게 얼마나 좋은 연기인지, 이게 얼마나 중요한 얘기인지 잠깐 잊고 있었다.



 참고로 지난해 정유미는 ‘우리 선희’ 직후 한 인터뷰에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정유미가 아니라 선희 같을 수 있는 것? 무리 없이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배우? 불편함을 주지 않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성공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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