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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저금리 시대가 더 무서운 부채의 덫

중앙일보 2014.10.21 00:05 경제 11면 지면보기
신세철
한신회계법인 상임고문
가계부채가 1000조를 넘어섰다. 가계부채나 다름 없는 자영업자 대출 140조원을 포함하면 118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보다 많다. 공공부문을 포함한 정부부채 또한 머지않아 GDP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번 걸려들면 여간해서 헤어나기 어려운 것이 부채의 덫이다.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모두 부채가 초래한 혼란과 위기였다.



 빚은 기업은 물론 나라까지 위협한다. 구한말 일제는 조선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기 위한 계략의 하나로 차관을 빌려줬다. 이 돈은 일본 거류민을 위한 편의시설, 일제가 조선을 억압하기 위한 경찰조직 확장 등에 쓰도록 강요당했다. 영국이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으로 중국인들을 중독시키고 부채의 함정에 빠트린 것과 다르지 않다. 대한제국이 걸머지게 된 빚이 삽시간에 늘어나면서 경제적 주권은 송두리째 일제에게 넘어갔다. 결국 나라까지 넘어갔다.



 세계경영을 표방하며 확장을 거듭하였던 거대 재벌의 몰락도 빚을 두려워하지 않은 탓이었다. 과거 성장의 이름 아래 정경유착에 빠른 기업들은 거의 제로금리로 구제금융 내지 정책금융을 대규모로 지원받았다. 고성장 고물가 고금리 상황에서 초저금리로 빌린 빚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었다. 공금리와 시장금리의 괴리가 큰 상황에서는 빚이 많을수록 벼락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금리자유화가 진행되고, 외환위기 뒤 금리가 치솟으며 부채에 의존해 성장해온 기업의 재앙이 시작되었다. 돈의 값을 제대로 물어야 하는 환경이 되자, 빚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했다.



 숱한 기업이 파산한 뒷감당은 국민들이 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부 기업집단의 급속한 부채증가에 따른 위험을 경고하였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재벌서열이 뒤바뀔 정도로 부채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이를 방치했다. 아니면 점점 다가오고 있었던 위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했는지 모른다. 대우그룹 해체와 현대사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는가?



 부채는 머리에 무거운 짐을 얹는 것과 같다. 빚진 자의 행동을 제약한다. 기업의 경우 신기술 개발 같은 투자기회가 있어도 자금조달이 어려워 대응하기 어렵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기 시작하면, 시간이 흘러도 그 짐을 벗기보다, 도리어 더 무거워지기 쉽다.



 저성장 저물가 시대에 동반한 저금리가 빚을 없애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도 화폐가치가 떨어지지 않아 빚의 수렁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진다. 다시 말해 저금리 시대에는 빚지는 일을 더 두려워해야 하고 더 열심히 저축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민간부분은 물론 공공부분의 부채 증가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아직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가계, 기업, 정부 모두 부채의 덫이 초래할 위험과 불확실성에 미리 대비하여야 재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세철 한신회계법인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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