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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른 환풍구, 서울에만 6000곳

중앙일보 2014.10.20 01:50 종합 1면 지면보기
18일 밤 서울 명동역 인근 지하철 환풍구 위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장혁진 기자
“덜컹덜컹 소리 날 때마다 불안하죠. 매일 환풍구 위로 사람들이 수백 명씩 지나다니는데….”


하루 수십만 명 다니는 명동
인도 3분의 2 환풍구로 덮여
짐 쌓여 있고 노숙인 잠자고
경고문도 없어 … "접근 막아야"

 18일 오후 서울 명동 지하철역 인근 환풍구 옆에서 간이매점을 운영하는 박모(62)씨는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불안해했다. 지난 17일 27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성남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때문이었다. 박씨의 간이매점 옆에는 길이 10m, 폭 3m 정도의 환풍구가 설치돼 있다. 환풍구는 철제 덮개인 ‘스틸 그레이팅(steel grating)’으로 덮여 있었다.



 지하공간의 공기 순환을 위해 설치된 이 같은 환풍구는 지하철이나 고층건물·아파트단지 주차장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내 지하철 환풍구는 총 2418개소로 이 중 보도 위에 설치돼 있는 곳은 1777개소. 이 가운데 환풍구 둔턱의 높이가 30㎝ 이상인 곳은 1578개소, 30㎝ 미만은 199개소에 달한다. 여기에 지하주차장이 있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3640단지를 포함하면 환풍구 시설이 서울에만 최소 5400여 곳에 이른다. 대형 상가·공원 지하주차장 등의 환풍구까지 합치면 6000곳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기자가 시내 곳곳을 다니며 취재한 결과 환풍구 덮개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지 않거나 위험 표시 없이 설치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명동 퇴계로 일대 약 5m 폭의 인도는 환풍구 덮개가 차지하는 면적이 3분의 2 이상이었다. 덮개 아래쪽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직장인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유동인구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곳이지만 인도와 환풍구가 전혀 구분돼 있지 않은 것이다. 환풍구 둔턱의 높이도 5㎝ 정도에 불과해 보행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다녔다.



 남대문시장 인근 환풍구 위에는 상인들이 세워둔 것으로 보이는 오토바이(125cc·약 150㎏)와 각종 물건이 올려져 있었다. 심지어 노숙인이 잠을 자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기자가 “왜 여기에서 잠을 자느냐. 위험하다”고 하자 “(환풍구 위는) 따뜻한 바람이 올라와 잠이 잘 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귀금속상가·학원·카페 등이 밀집해 있는 종로 의 상황도 비슷했다. 한 보석상점 앞 길가에 위치한 폭 3m가량의 환풍구 철제 덮개는 아래쪽으로 3㎝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바로 옆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어 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덮개 위를 지나다녔다. 사람이 추락할 경우 7~8m 아래로 떨어질 수 있지만 덮개 밑엔 아무런 지지대가 없었다. 무게도 성인 남성의 힘이면 들어올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3㎝ 주저앉은 종로 환풍구 … 버스 타느라 뛰어다녀



아무런 주의 표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종로에 있는 외국어학원에 다닌다는 대학생 방모(25)씨는 “나도 사람들을 피해 환풍구 위를 뛰어다닌 적이 많았다. 최소한 안내 표시문은 주변에 해놓아야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판교 사고 후 경기도는 도내 안전관리 취약 시설에 대해 긴급 안전점검을 벌이기로 했다. 서울의 일부 지자체와 지하철역 관계자들도 뒤늦게 환풍구 주변에 위험 안내문을 써붙였다. 지난 주말 서울 광진구의 한 지하철역 환풍구 옆에는 ‘위험, 올라가지 마시오’라고 적힌 A4 용지가 붙었다. 환풍구 면적에 비해 안내문 크기가 지나치게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몇몇 시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환풍구 덮개 위를 밟고 지나갔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환기량과 환풍 주기 등만 나와 있을 뿐 덮개의 하중기준이나 환풍구 주변 위험 경고표시 등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판교 사고는 우리 사회가 환풍구 관련 시설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관련 규정 마련을 촉구했다. 경기소방재난본부장 출신인 서울시립대 제진주(소방방재학) 겸임교수는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의식이 뿌리내려야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안전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승기·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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