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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대통령의 7시간, 아이들의 70년

중앙일보 2014.10.15 00:15 종합 35면 지면보기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지난 주말 일본 북알프스 지역에 다녀왔다. 나고야 공항에 내려 기후현 다카야마시까지 버스로 2시간 반 걸렸다. 다카야마 터미널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깊은 산속에 있는 오쿠히다 온천마을까지 들어갔다. 마을 주변의 높은 산맥이 히다산맥이고, 통칭 북알프스라고 불리는 곳이다. 3000m 이상 되는 고산이 즐비한데,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산(3190m)은 일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한창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악 명승지 가미코지(上高地)의 경치는 그림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몇 달 전에 싸게 예약해 놓은 비행기표가 아까워 가긴 했지만 사실은 좀 망설이다 떠났다. 지난달 27일 분화구가 터진 온타케산 때문이었다. 내가 갔던 가미코지에서 온타케산까지는 직선 거리로 겨우 40㎞ 남짓. 게다가 가미코지에 위치한 야케다케산 정상(2455m)에서는 지금도 유황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1915년 6월 이 산이 터져 지금의 다이쇼 연못이 형성됐다. 야케다케산은 62년에도 분화해 화산재와 돌무더기를 쏟아냈다. 도끼와 곡괭이로 깊숙이 파놓은 듯한 산허리가 대분화의 생생한 상처다. 온타케산 폭발로 인한 사망자들은 대부분 시속 700㎞로 날아온 돌덩이에 당했다는데, 여차 하면 아얏 소리도 못 지르겠구나 싶었다.



 그런 불안이 채 가시지 않은 늦은 밤, 숙소에서 쉬며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데 채널 뒷부분에 이상한 화면이 떴다. 연예인들이 나와 찧고 까부는 장면, 다가오는 태풍(19호 봉퐁)을 알리는 기상예보를 뒤로하고 정적에 싸인 어두컴컴한 화면이 교대로 반복되고 있었다. 산 정상, 철탑, 계곡, 제방 등 10여 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전하는 실시간 영상이었다. 영상 중 하나는 적외선 카메라가 보내는 것이었다. 만일 화산이라도 터지면 카메라들이 바로 알려줄 것이고, 그 전에 적외선 카메라가 뜨거운 열기를 감지해 주민들에게 비상을 걸 터였다. 활동 중인 화산만도 110개나 되는 ‘화산 열도’가 일본이다. 나름 철저한 대비에도 불구하고 사망 56명, 실종 7명(11일 현재)이라는 전후 최악의 피해를 낸 온타케산 분화를 막지 못했다. 천재(天災)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인재(人災)까지 겹친 탓이다. 화산 폭발 전인 9월 11일 나가노 지방기상대는 “온타케산에서 지진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행정관청에 알렸다. 그러나 곧 잠잠해지자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경계 레벨을 1(평상시)로 그대로 두었다. 만일 ‘레벨 2’로 올렸다면 등산객들이 산에 오르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일이 꼬이려다 보니 온타케산 정상 부근에 설치한 지진계는 지난해 8월부터 고장 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는 화산 폭발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전형적인 인재다. 천재는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선장·선원·청해진해운과 구조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개인·기관이 문제였다. 미증유의 참사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단단히 세우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참사 이후에 또다른 ‘인재’와 맞닥뜨렸다. 세월호의 정치화, 정파화, 정쟁화라는 인재다. 굳이 용어를 만들자면 ‘정재(政災)’라고 해야 할까. 온갖 정치꾼들이 숟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통에 “교통사고” 같은 막말이나 대리기사 폭행 시비가 본질을 가리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내일이면 참사가 일어난 지 꼭 6개월인데, 이달 말까지 세월호특별법·정부조직법·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방지법)을 처리하겠다는 정치권의 다짐은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까. 그 다음 진상조사위·특검은 과연 당초 목적대로 굴러갈 것인가. 솔직히 말해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세월호 이후 같은 해운 분야에서만도 가슴이 졸아들게 만드는 사고가 여러 번 발생했다. 전남 신안군에서 홍도바캉스호 좌초 사고가 났고, 인천 옹진군 문갑도 해상에서도 30명을 태운 여객선이 어망에 걸려 4시간이나 표류했다. 그제만 해도 대천 앞바다에서 65명이 탄 배가 조타기 고장으로 떠다니다 구조됐다. 대형 참사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조짐으로 보아야 한다. 결국 나라의 안전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손보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 세월호 수습의 본령인데, 우리는 안전대책보다 정쟁에만 몰두하는 모양새다. 특검이든 진상조사위든 ‘대통령의 7시간’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공방에 유혹을 느끼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가장 많이 희생당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앞으로 70년은 더 살 수 있었다. 어른들 때문이다. 대통령의 7시간과 아이들의 70년 중 무엇이 더 소중한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남은 70년을 빼앗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재발방지책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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