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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자는 불쌍한 샐러리맨 … 미국으로 와라"

중앙일보 2014.10.09 01:35 종합 2면 지면보기
나카무라 슈지 교수(왼쪽)가 7일 UC샌타바버라에서 동료이자 200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크로머 교수와 환담하고 있다. [샌타바버라 AP=뉴시스]


김현기
도쿄 특파원
“축하합니다. 역시 일본이 과학 강국임을 전 세계에 알린 쾌거인데요. 소감은 어떠신지요.”(8일 오전 TV아사히 사회자)

[현장에서] 나카무라 교수, 독하게 일본 비판
"연구 자유 없고 기업의 노예 취급 이치로처럼 연봉 받으면 나쁜 건가"
과학분야에서 19명 배출했지만 안주하지 않는 끝없는 자성 무서워



 “일본의 연구자는 불쌍하죠. 샐러리맨입니다. 훌륭한 연구를 해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잖아요.”(나카무라 교수)



 “ 창업을 생각하는 일본 젊은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요.”(사회자)



 “음. 미국으로 오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일본은 법 체계부터 시작해 각종 시스템이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에요. 미국은 다릅니다. ”(나카무라 교수)



 인터뷰는 겉돌았다. 7일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60) 미 UC샌타바버라 교수는 일본 TV가 ‘원하는’ 답을 끝까지 내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일본 학계와 산업계·사법부를 독하게 몰아세웠다. 방송 진행자들이 당황하며 머쓱해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나카무라 교수가 수상 소식을 접한 뒤 내놓은 발언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틀을 깨지 않으면 일본 과학의 미래는 없다.”



 그는 먼저 과학자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과학자는 돈 벌어선 안 된다’는 세뇌 교육을 받고 있다” “연구자는 기업의 노예가 아니다. 이치로(메이저리그 일본인 야구선수)와 비슷한 연봉(약 65억원)을 요구하는 게 뭐가 나쁜 일이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하나는 규제와 ‘자유’가 없는 연구 환경. “일본에선 성별, 연공서열 등의 차별에 의해 전원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또 발명을 많이 하지만 그걸 국제화해 창업하는 걸 각종 규제가 막고 있다. 그러니 뒤진다”고 일갈했다. “퀴즈 프로그램 같은 대학 입시 시스템이 ‘시시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원흉”이란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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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무라 교수는 자성(自省)과 각성을 촉구했다. 학문적 발견이 아닌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샐러리맨 출신 연구자로서 느낀 바가 남달랐을 것이다. 그가 1993년 LED를 개발한 덕에 조그만 화학업체에 불과했던 니치아(日亞) 화학공업은 연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보상은 과장 승진과 특별수당 2만 엔(현재 환율로 약 20만원)뿐이었다. 그는 발끈해 퇴사하곤 미국으로 건너가 2000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또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도쿄지법에서 “나카무라의 발명 대가는 604억 엔(약 6000억원)”이란 판결을 얻어냈다. 이런 내용이 담긴 그의 저서 『좋아하는 일만 해라』(2004·사회평론)는 본지 예영준(현 베이징 특파원) 기자의 번역으로 국내에서도 출간됐다.



 ‘괴짜 연구자’ 나카무라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그동안의 수상자와 확연히 다른 점들이 있다. ‘모범생 과학자’가 아닌 ‘돈 버는 과학자’, 그리고 도쿄대·교토(京都)대 등 명문대가 아닌 지방 대학(도쿠시마대) 출신도 노벨상을 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파는 것만이 결코 정답은 아니며 “결과를 얻기 위해 분노의 마음으로 달려들었다”(나카무라 교수)는 것도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3명의 일본인(일본계 미국인 1명 포함)이 공동 수상하면서 일본의 과학 분야 수상자 수는 총 19명. 5년여 전인 2009년 4월 ‘일본 과학의 힘-노벨상 수상자 연쇄 인터뷰’ 시리즈를 하면서 “왜 우리는 한·일전 야구에서 지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무한한 경쟁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13대 0이라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 스코어에 억울해하고 불끈하지 않는가”라 쓴 기억이 난다.



 이제 스코어는 19대 0으로 더 벌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스코어 차이가 아니다. 현상에 만족하지 않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일본의 ‘무서운 자성’이 훨씬 더 무섭고 부럽다.



도쿄=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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