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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깎인 학교 … 원어민 강의 접고, 20년 골동품 기자재

중앙일보 2014.10.09 01:13 종합 6면 지면보기
황우여 교육부 장관(왼쪽)이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신호 차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지방교육재정의 악화 원인과 해법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뉴스1]


서울 강남의 한 고교는 올 초 방과후학교 지원 예산이 3년 전에 비해 3분의 1로 확 깎였다.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연초 책정한 학교운영비 4억2000만원에서 1400만원을 깎겠다는 통지를 받은 뒤론 상황이 더 나빠졌다. 학교운영비엔 학습 기자재 구입비와 공공요금(전기·수도·가스), 보조교사 인건비, 시설 보수비 등이 포함된다. 이 학교 방과후학교 교사 A씨는 “3년 전만 해도 여유가 있어 수업뿐 아니라 외부 체험활동도 많이 했는데 요즘엔 과학실험 기자재나 소모품 살 돈도 없다”며 “질 좋은 교육은 차치하고 기본 예산도 뒷받침되지 않아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정난에 황폐해지는 교육 현장
전기료 아끼려 찜통교실 수업도
서울 저소득층 학비지원 303억 줄어
"취약계층 외면하는 복지의 역설"



 강남의 한 중학교는 최근 학부모들에게 “학교운영비가 삭감되면서 학부모들의 후원과 도움이 절실하다”는 호소문을 돌렸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무상급식·돌봄교실 같은 무상교육 확대가 ‘교육 현장 황폐화’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7일 내년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강수를 둔 가운데 이어 교육 현장 곳곳에서 파행을 빚고 있다. 일부 학교는 건물 보수나 시설 투자는 엄두도 못 낸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교실과 강당의 페인트가 너덜너덜하게 벗겨져 보수를 요청했지만 실사단이 ‘(다른 학교에 비해) 이 정도는 양반’이라며 거부했다”며 “무상급식 예산 20%를 관할 구청이 부담하면서 시설 지원 예산을 끊어 상황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수업 진행도 차질을 빚고 있다. 시교육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강사료 지원을 끊어 원어민 영어 회화 수업을 중단한 강서구의 한 중학교는 계약직 한국인 교사를 채용해 회화 수업을 진행한다. 교과서 문제를 풀고 영어 회화 카세트테이프를 들려주는 식이다. 이 학교 교장은 “여건만 되면 원어민 강사를 활용하고 싶지만 지원 예산이 부족해 학교 운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올해 말까지 중·고교 원어민 강사 지원을 모두 중단하고 한국인 교사로 대체할 계획이다.



 8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교육부 국정감사에서도 현장 파행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안홍준(새누리당) 의원은 “전국 초·중·고 실험실에 있는 현미경 중 10%가 20년 넘게 쓴 골동품이고 10년 이상 된 현미경도 44%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유은혜(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초·중·고에서 전기료를 아끼려고 냉방기 사용을 줄여 학생들이 ‘찜통교실’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전기료를 특별교부금(국가사업)으로 편성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선교(새누리당) 의원은 “예산 부족으로 초등학교 스포츠강사가 지난해 3800명에서 올해 2911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무상교육 예산 급증을 파행의 원인으로 꼽는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곽노현 교육감 시절 도입한 무상급식 예산이 2012년 1780억원에서 올해 2631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초등학교 돌봄교실 예산은 167억원에서 446억원, 누리과정 예산은 2067억원에서 5473억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학교시설 개선 사업비(2521억원→801억원), 학습 준비물 무상 지원(183억원→114억원), 저소득층 학비 지원(798억원→495억원) 예산은 줄었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작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외면 받는 ‘무상 복지의 역설’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국감장에선 재정난의 책임을 두고 여야 의원 간 공방도 벌어졌다. 유기홍(새정련) 의원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한 교육감들에게 아이를 볼모로 잡지 말라고 지적한 건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신의진(새누리당) 의원은 “교육청 재정난은 이해하지만 교육감들이 일방적으로 입장을 통보하고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황우여 “무상보육, 최종적으로 국가 책임”=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최종적으로 누리과정은 국가가 책임지고 할 것”이라며 “파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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