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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우리는 자유무역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중앙일보 2014.10.09 00:15 종합 29면 지면보기
제프 매드릭
센트리재단 수석연구위원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때는 거의 없다. 다만 ‘무역은 다다익선(多多益善)’ 원칙에는 모두 동의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유럽연합(EU)과의 무역협정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미국 국민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이유가 있다.



 자유무역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긴다. 근로자들은 손해 보는 쪽이다. 자유무역은 임금 삭감과 고용 불안정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다. 자유무역이 엄청난 번영을 가져온 건 사실이지만 혜택은 주로 최상위층에게 돌아갔다.



 다수 경제학자들은 이런 반응을 세계화 피해자들의 투덜거림 정도로 치부한다. 그렇게 무시하기보다는 자신의 경제 이론과 모델의 결함을 고찰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1970년대 들어 저관세,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 산업 보조금 철폐, 노동시장 규제완화, 균형예산, 저인플레이션 지향이 정설로 굳어지며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 불리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개도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할 때마다 이를 기조로 처방전을 내렸다.



 얄궂게도 영국·프랑스·미국은 산업혁명 시기 고관세와 정부의 산업지원, 금융시장 규제, 고정 통화 등 정반대 정책을 통해 지금의 자리로 올라왔다. 그래도 무역은 확대됐고 자본 흐름은 원활했다.



 45년 이후 30년간 계속된 미국의 경제호황은 경제학자들이 자유무역을 과대평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의 고성장은 전쟁 기간에 억눌려 왔던 수요, 마셜 계획, 냉전시기 군비지출, 대학·고속도로·과학연구에 대한 투자 확대, 유가 하락 등 다양한 요소가 모두 작용해 만들어진 결과였다.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자유시장 신봉자들은 70년대부터 무역과 자본의 흐름을 막는 장벽의 철폐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의 방해가 없다면 전 세계가 효율성 높은 단일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종종 처참했다. 중남미의 경우 80년대 보호관세를 인하했지만 성장은 오히려 정체됐다. 자본 규제의 완화와 철폐도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단기성 투자 자금의 갑작스러운 철수로 동아시아·러시아·아르헨티나·터키는 90년대 중·후반 외환위기를 겪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결함투성이다. 아웃소싱과 제조업 쇠퇴, 수입 의존도 심화가 미국 노동자의 임금을 갉아먹었다는 건 자유무역 신봉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 컨센서스를 따라온 중간소득국은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를 무시했던 중국·인도·브라질은 빠르게 성장하며 생활수준을 끌어올렸다.



 글로벌 시장 확대는 바람직하지만 좀더 건설적인 무역 및 자본, 통화 정책을 세우려면 역사가 주는 교훈을 잘 살펴야 한다.



 첫 번째 교훈은 갑작스러운 시장경제 도입과 규제 완화, 민영화보다 점진적 개혁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와 태국은 성급한 자본시장 개방으로 톡톡히 대가를 치렀다. 역사가 검증한 확실한 지속적 성장 모델은 다음과 같다. 핵심 산업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킨 후 경제구조를 다변화한다. 자본시장을 계획에 따라 서서히 개방한다. 착취적 임금 관행을 막고 근로 조건을 개선한다.



 둘째, 각국은 정책 실험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실제로 초기 단계 산업 지원이 필요한 국가가 있는가 하면 비대해진 국영기관의 민영화가 우선인 국가도 있다. 실업보험을 비롯한 근로자 보호가 먼저일 수도 있고 노동 유연성이 더 절실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환경과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수단이 부족하다.



 셋째, 수출에만 무한정 의존하는 성장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수지 불균형은 경제를 왜곡한다. 유로(euro) 고정환율제와 임금 억제를 기반으로 독일이 누리는 엄청난 무역 흑자 또한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때에는 사회안전망 강화 계획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 부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직업교육, 실직 근로자 지원, 실업급여의 인상과 지급기간 연장이 여기 해당된다. 자유무역협정은 인프라 투자를 통한 성장 촉진, 청정에너지 및 필요한 기타 산업에 대한 보조금, 중소기업 대출, 심지어 노동자 급여 지원금 등 보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체결하려면 반드시 공개적 논의 과정을 통해 노동자 권리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신흥국이나 대기업이 요구하는 규제 개정에 대해서도 건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EU와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게 적절하긴 하지만,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환경과 금융, 제품 안전성 규제가 약화될 위험이 있다.



 자유무역이 반드시 제로섬 게임은 아니라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자유무역으로 얻게 될 번영을 극대화하고 모두가 공유하기 위해서는 지난 40년간 저질렀던 정책적 실수를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제프 매드릭 센트리재단 수석연구위원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0월 5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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