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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내들, 해들누리, 요술 손가락 … '뭐하는 곳일까' 궁금해 들어가죠

중앙일보 2014.10.09 00:01 1면 지면보기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순우리말 간판들.



순우리말 간판 덕 보는 가게들

외국어와 외래어, 출처를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쓴 간판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순우리말 간판이 간혹 눈에 띈다. 특색 있는 순우리말 간판에 끌려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나는 가게도 있다. 한글날을 맞아 순우리말 간판으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천안·아산 지역 가게들을 찾았다.



글=강태우 기자·이은희 인턴기자 , 사진=채원상 기자



천안시 두정동 상가 지역, 이른바 ‘먹자골목’에 들어서자 카페·식당·술집의 화려한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외국어 천지다. 이런 외국어 간판 홍수 속에서도 지역 특징을 담은 독특한 순우리말 간판이 속속 생겨나 손님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가게 홍보 효과 톡톡



천안시 신부동에서 설렁탕집을 하는 ‘한내들’ 주인 이혁주(54)씨는 특이한 가게 이름 덕을 봤다. 신부동 대림 한내·한들 아파트와 가까운 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씨는 ‘한내들’이라는 순우리말 간판을 내걸어 2011년 상명대 국어문화원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가게 이름’에 뽑혔다. 한내들은 천안 신부동 성당 근처에 있는 들판을 일컫는다. 대림 한내·한들 아파트 이름도 한내들에서 유래했다.



 한내들은 ‘큰 내(川)가 있는 들판’을 뜻한다. 옛날 천안 지역 사람들은 ‘대천평(大川平)’으로 불렀는데 한글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한내들로 불리게 됐다. 이처럼 지역 특성을 살린 순우리말 이름은 사람들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이씨는 설렁탕을 파는 식당 성격을 잘 표현하면서도 지역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가게 이름을 고민하다 한내들로 지었다. 설렁탕은 예로부터 전해 오는 전통음식이기에 한국적인 멋을 살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가게 이름을 순우리말로 짓게 된 데엔 고어(古語)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천안 출신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현재 식당이 위치한 곳이 한내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2001년 개업한 그는 “순우리말로 가게 이름을 지었더니 손님들이 식사 후 ‘가게 이름의 뜻이 뭐냐’고 묻는다”며 “가게에 더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천안시 안서동에 있는 떡집 ‘떡이랑 방아랑’도 순우리말의 멋을 살린 사례다. ‘떡 방앗간’이라는 말을 떠올려 가게의 특성을 잘 나타내면서도 ‘~(이)랑’을 반복 사용해 운율을 맞춰 소리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이름으로 평가받아 2010년 상명대 국어문화원에서 ‘아름다운 가게 이름’으로 선정했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고재춘(53)씨는 “처음엔 부인과 함께 성을 딴 ‘고유떡집’이나 안서동에 있으니 ‘안서떡집’ 같은 이름을 두고 고민했었다”며 “하지만 손님들에게 친근함을 주기 위해 ‘떡이랑 방아랑’이라고 지었다. 이름이 특이해 손님들이 금방 기억한다”고 말했다.



 일부러 외국어나 외래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쓰는 경우도 있다. 천안시 다가동의 ‘요술 손가락’은 피아노학원이지만 영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고집했다. 김미영(36) 원장은 “피아노 학원 명칭은 보통 음악가 이름이나 영어를 많이 쓰지만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쉽게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말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환자가 이를 치료한 후 활짝 웃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함께 웃는 치과’, 아이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샘이라는 뜻의 ‘아가샘’ 어린이집, ‘가뭄 끝 단비’라는 우리말 관용구를 연상시켜 반갑고 밝은 마음을 갖게 해주는 음식점 ‘단비’, 세상을 뜻하는 고유어 ‘누리’에 ‘해가 들다’는 말이 합쳐진 ‘해들누리’ 학원, 식당 ‘나무마당’ ‘들꽃’ ‘마실’, 어린이집 ‘아이꿈터’ 같은 다양한 우리말 이름이 상명대 국어문화원 선정 ‘아름다운 가게 이름’에 포함됐다.



‘아름다운 가게 이름’ 공모



상명대 국어문화원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외국어나 외래어가 쓰인 가게 이름이 좋다’는 천안시민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아름다운 가게 이름’을 공모했다. 하지만 아직도 거리엔 외국어나 외래어, 불분명한 외계어가 쓰인 간판이 수두룩하다.



 상명대 김미형 국어문화원장은 “우리나라에선 영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영어를 써야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에서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쓰이는 것은 잘못됐다”며 “우리말 간판은 친근함과 편안함을 주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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