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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와 K팝 걸그룹 스타 두 토끼 잡기엔 …

중앙선데이 2014.10.04 17:34 395호 29면 지면보기
이번 주 가장 이목을 끈 뉴스는 8명이 된 소녀시대다. 제시카가 탈퇴한 것인지, 퇴출당한 것인지를 두고 여전히 인터넷이 뜨겁다. 제시카는 일방적으로 내쫓겼다고 하고, 소속사 SM은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둘이 입장 차이를 보이게 된 핵심이 제시카의 패션 사업인데, 그는 현재 아이웨어 브랜드 ‘블랑’을 만들어 CEO 겸 디자이너를 맡고 있다. 사업은 이미 홍콩·중국·싱가포르·태국 등에 진출해 18개 매장에 입점해 있기도 하다.

스타일# : 제시카의 소녀시대 하차

실시간으로 이에 관한 후속 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의아했던 건 하나였다. ‘가수 활동을 우선순위에 두고’ 디자이너를 했고, 또 하겠다는 그의 속내다. 예쁜 옷 많이 입어 본 연예인이 디자이너 욕심을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데 그는 연예인, 그것도 K팝을 대표하는 최고의 걸그룹 멤버다. 방송 출연, 국내외 콘서트, 팬 사인회, 앨범 준비 등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스케줄일 게 뻔하다.

디자이너가 별건가 싶어도 최고 한류 스타가 ‘부업’으로 할 일은 아니지 싶다. 지금껏 만났던 디자이너들의 푸념을 떠올려 보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매번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스트레스가 되고, 설사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이것이 브랜드 컨셉트나 타깃층과 맞는지를 또다시 고민하게 된단다. 여기에 디자인을 이해해 주는 궁합 맞는 생산 공장을 발굴해 내고, 새 컬렉션에 어울리는 소재를 찾아나서는 것도 디자이너의 중요한 업무다. 하청 맡긴 공장에서 제때 물건이 나오지 않아 위약금까지 물어줄 위기에 처했던 에피소드는 누구나 한번쯤 겪었다는 통과의례 정도다. 이렇게 컬렉션이 끝나면 다음 컬렉션이 바로 온다. 디자이너라는 건 결국 업무 종료가 없다는 얘기다.

제시카는 자신의 브랜드의 제품 디자인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랜드 홈페이지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소개글 문구가 이렇다.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구축해 온 제시카가 자신의 세련된 디자인 감각과 고전적인 미적 감각을 보여드립니다.” 절제미·모던미·독특함이 어우러진 디자인을 선보이겠다는 내용도 있다. 시간적 제약, 육체적 피로는 극복한다 해도 새로운 경험과 영감, 풍부한 자료 조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일 터다.

이 대목에서 한 디자이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이미 신진 때부터 서울패션위크에서도 꽤 두각을 보이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을 ‘디자이너’로 소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류 제조업자'라는 말이 더 맞지 않느냐면서. “디자이너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디자이너가 정말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해야할지 아직 저도 모르겠는데 말이죠.”

사람들이 좋아하고 잘 팔리는 걸 만들면 좋은 디자이너가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이 넘쳐나고 ‘무슨무슨 st(스타일)’이라 이름 붙인 카피 제품이 판을 치는 시대에 디자이너가 되겠다면 세상을 바꿀 만한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을 지녔으면 싶다. 그리고 딱 그만큼의 책임감으로 디자이너라는 길을 걸었으면 한다.

한류 바람을 타고, 혹은 스타의 인기를 업고 가겠다면 그건 ‘업자’라는 게 더 맞다. 어느 중년 배우가 ‘기획과 디자인 전반에 모두 참여하는’ 패션 브랜드를 또 런칭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 생각이 더 확고해 진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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