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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가 천박함을 벗어나려면 …

중앙선데이 2014.10.04 17:53 395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이상돈 출판사: 책세상 가격: 2만8000원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게, 지적인 천박함 아닐까. 진보 하면 마르크스부터 피케티까지 수많은 저작이 떠오르지만 보수가 들고다니는 책은 주식 시세표나 그랑 크뤼 와인 리스트가 연상되니 말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 골치아픈 사상은 배고픈 좌파들에 맡겨두고, 색깔론 같은 편한 무기로 권력만 유지하면 된다는 게 이 나라 보수층의 속내다. 그런 전략이 적중했는지 보수는 진보의 실패를 숙주삼아 두 차례 집권했지만 집권 후 성적은 엉망이다. 전통과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정적(政敵)과 약자를 포용할 줄 아는 보수주의의 오리지널리즘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보수: 위기의 보수… 』

서구의 오리지널 보수주의는 지적운동에서 시작됐다. 절대왕정에 대항하던 부르주아 계급은 루소와 로크 같은 위대한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배출했고 이들의 자유론은 미국으로 건너와 현대 보수주의를 꽃피웠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윌리엄 버클리의 ‘지적 운동(Intellecrual Movement)’이나 알렉산더 비켈의 ‘사법 보수주의(Judicial Conservatism)’ 같은 정신에 뿌리를 두고있다. 탄생한지 200여 년 밖에 안된 미국이 초강대국 리더십을 유지하는 건 이런 내공 탄탄한 사상의 뒷받침에 힘입은 것이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이라크 전쟁이나 월가발 금융위기 같은 권력과 자본의 전횡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동원되기도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수많은 보수-진보 논객들이 연일 도발적인 책들을 쏟아내며 백가쟁명을 벌인다는 점에서 미국은 희망이 있는 사회다.

저자는 한국의 무지한 보수와 편향된 진보가 이런 미국의 보혁논쟁을 통해 공히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에서 출간된 저술 100권을 엄선해 소개한다. ‘합리적 보수’를 자처해온 저자는 우선 보수에 처방전을 내린다. 작은 정부를 떠들면서 끝없이 지출을 늘리고, 인권을 부르짖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독재왕정을 지원하며, 인종주의나 소송남용 같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끝에 진보(민주당)에 정권을 내주고만 미국 보수의 문제점을 조지 윌(『한 남자의 미국』), 데이비드 프럼(『컴백』), 미키 에드워즈(『보수주의를 되찾다』) 등 일급 보수 논객들의 저서를 통해 파헤친다. 이들은 미국 보수가 부활하려면 보수주의의 발원지였던 ‘지적 운동’으로 돌아가야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저자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마추어리즘과 말로는 진보를 떠들면서 호화저택에서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리무진 좌파’들의 실상을 전한 책도 여럿 소개한다. 정치에서 이념은 껍질에 불과하며, 진영을 뛰어넘는 실천과 각성만이 진정한 잣대가 되야한다는 메시지다.

저자는 지난 7년 동안 권당 400~500쪽에 달하는 영어 원서 100권을 숙독하고 써둔 소감들을 모아 이 책을 냈다. 그 자체가 ‘공부하는 보수’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소개된 책들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번역되지 않았다. 읽는 이의 이념 성향이 어떻든 미국 지성들이 쓴 책 100권의 엑기스를 한눈에 흡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본전은 뽑을 것 같다.


글 강찬호 기자 coldst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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