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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회 불신과 검찰 '엄포'가 부른 '사이버 망명'

중앙일보 2014.10.04 00:33 종합 30면 지면보기
난데없이 ‘사이버 망명’이 사회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이버 망명이란 자국에서 인터넷 이용에 제한을 받는 사용자가 활동무대를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외 서버로 옮기는 행위를 이른다. 네티즌들이 국내 카톡에서 독일 텔레그램으로 옮겨가면서 유행한 용어다.



 발단은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사이버상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이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검찰은 인터넷업체 관계자들을 불러놓고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꾸리겠다” “온라인 공간에서 허위사실을 퍼나르기만 해도 엄벌에 처한다”고 선포했다.



 ‘엄포’는 사이버 공간을 뒤흔들었다. 카톡이 실시간 감시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퍼졌다. ‘텔레그램’의 다운로드 순위가 수직 상승했다. 국내 이용자는 불과 2주 사이에 2만 명에서 26만 명으로 늘었다. 검찰과 업체가 검열 사실을 전면 부인했지만 공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논쟁은 정치권으로 옮겨 붙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제 브리핑에서 “검찰 발표는 헌법정신에 배치되는 후진적 조치”라고 비난했다. 새누리당은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방침에 동참하라”고 밝혔다.



 사이버 공간의 유언비어 살포나 인격모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비난과 욕설로 오염돼 가는 저질 문화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정부와 검찰이 사이버 세계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거칠게 대응했다는 데 있다. 사이버 세계의 인격모독은 현실세계보다 잡아내기 쉽다. ‘디지털 흔적’이 남기 때문에 범죄 입증이 더 수월하다. 고소·고발이나 사회적 물의가 터졌을 때 악의적인 네티즌을 신속히 잡아내 엄하게 처벌하면 된다. 검찰이 업계 관계자를 모아놓고 으름장을 놓는 방식은 ‘사전 검열’ 공포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불신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의 침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과도한 수사 관행은 관련 산업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 2011년 구글이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막판에 무산됐다. 한국의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요란스럽게 한다는 점이 실패의 주 원인이었다. 정보통신업체에 고객 정보의 보호가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이버 세상의 세계화 정도는 현실세계보다 훨씬 강하다. 한 국가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어기면 바로 역풍을 맞는다. 네티즌이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행동과 발언은 삼가야 한다. 법원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때 요건·대상·범위를 좀 더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 사이버 ‘어장’이 불신으로 물드는 순간 ‘고기’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 어장은 망가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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