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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갑질 국감' '호통 국감' 제발 그만둬라

중앙일보 2014.10.04 00:31 종합 30면 지면보기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기업인들이 무더기로 국감장에 불려 갈 것으로 보인다. 국감의 기업인 증인은 2011년 80명에서 지난해 177명으로 늘었는데 올해도 상임위별로 기업인들을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선 기업인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1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황창규 KT 회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대표 등을 증인으로 신청하자 새누리당이 이에 반발하면서 국정감사 계획에 대한 합의가 무산됐다.



 올해 국정감사는 세월호특별법 문제로 늦게 열리는 바람에 그렇잖아도 ‘졸속 국감’이 예상되고 있다. 공휴일을 빼면 17일밖에 안 되는 기간에 사상 최대인 672곳을 감사해야 한다. 정부기관에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결국 지난해처럼 기업인들을 국감장에 불러 ‘뻗치기’를 시켜 놓고 평균 2분짜리 호통을 치거나 절반 정도는 질문도 안 하고 돌려보내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되풀이될 게 뻔하다.



 원래 국감의 주 대상은 정부와 광역 지방자치단체다. 기업인을 증인으로 부를 경우 정부 예산·정책과 관련된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국회에선 기준 없는 기업인 증인 소환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국감법에 ‘증인·참고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고만 돼 있을 뿐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사법기관에서 처리된 사안을 이유로 기업인들을 부르는 경우도 많다.



 국가기관의 경우 대상 기관의 기능이 현저히 저해되거나 기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의원에게 주의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인 증인에 대해선 이러한 주의의무 규정조차 없다. 근거 없는 주장으로 기업의 신용을 훼손하거나 망신을 줘도 의원들을 통제할 장치가 없는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올해 엄정한 감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은 150여 일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공전한 국회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기업인들을 불러 놓고 ‘갑(甲)질’을 할 게 아니라 본질적인 국정감사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의 말처럼 매년 이런 구태가 되풀이된다면 국민은 폭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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