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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높게만 느껴지는 선진국 진입 문턱

중앙일보 2014.10.04 00:27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한국의 사회통합 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회 정치적 갈등이 OECD 평균보다 심하다는 얘기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나라 전체가 갈등의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단테의 신곡이 식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문. 그 앞에는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두 희망을 버리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물론 한국은 지옥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갈등을 보면 이 표지가 너무 리얼하게 다가오고 있다. 세월호 해법은 아직 갈 길이 멀고, 국회는 개원했으나 여야 갈등은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말 희망을 버려야 할 지경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선거로 대통령을 6명이나 바꿨다. 정치학 연구에 의하면 민주적 선거로 정권이 두 번 정도 바뀌면 민주주의는 성숙단계로 진입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쯤 우리는 여야의 타협정치로 성숙한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여야가 나라의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는 ‘탈(脫)당파적’ 정치의 시대가 나타날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그렇게 기대했던 탈당파적 시대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대통합’과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며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우리는 국민 대통합과 비정상의 정상화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국가를 위한 통치보다는 전리품 정치가 점점 심해지는 모습이다. 적십자사 총재를 비롯한 최근의 인사를 보라.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떤가. 타협 자체를 반역시하는 극단의 움직임이 팽배한 듯하다. 그 때문에 새누리당과의 초당적 협력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화의 파트너로 상대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보다 더 큰 문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어느 나라고 사회적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도 우리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 흑백갈등에 인종·이민·계급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와는 달리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제도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으로 불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유학시절 목격한 한 장면이 아직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이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 대학본부 건물. 학생들을 설득하다 지친 대학당국이 택한 것은 법원에서 농성금지 명령서를 받아오는 것이었다. 반발이 거셀 줄 알았다. 하지만 법원의 농성 금지 명령서가 낭독되자 학생들은 말없이 흩어졌다. 우리 대학의 총장실 점거 사태에 익숙한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법의 지배가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영국에서의 경험은 더욱 리얼했다. 영국 외무부 초청을 받아 방문 시기를 조정할 때였다. 여름방학 기간에 방문하고 싶다고 했더니 초청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름에 의회가 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영국에 초청하는 것은 의회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얘기였다. 영국 의회는 장관석과 야당석 간의 거리가 좁다. 타협의 예술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큰 소리로 악을 쓰면 타협을 이끌어 낼 지혜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윌리엄 블랙스톤 경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영국 의회는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큰 목소리로 악을 써야 하는 우리 국회의 모습과 너무 대비된다.



 법의 명령에 따르는 사회, 의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사회. 이런 나라가 선진국이 아닐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법도 통하지도 않고, 의회도 존중되지 않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의 신뢰도 조사에 의하면 국회가 가장 낮고, 그 다음이 사법부다.



 이래서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작금의 갈등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겪는 진통일 수도 있다. 잘만 하면 보다 고차원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신진대사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결정을 해야 한다. 극단을 배제하고 법과 의회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지를.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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