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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남북 축구 결승 … 탈북자 "금메달 나눠먹었으면"

중앙일보 2014.10.01 02:16 종합 2면 지면보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에서 36년 만에 남북 간 결승전이 열린다. 태국을 꺾은 뒤 결승 진출을 자축하는 세리머니를 하는 한국 대표팀. [인천=강정현 기자], [뉴시스]


30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에서 한국이 태국을 2-0으로 꺾었다. 앞서 열린 준결승에선 북한이 연장전 끝에 이라크에 1-0으로 이겼다. 남북이 맞붙는 결승전은 2일 오후 8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다.

[인천 아시안게임] 축구장의 남과 북
36년 전 방콕선 남북 공동우승
여자축구 대결 땐 한반도기 응원
"얼굴 알려지면 안 돼" 선글라스도
"북 선수, 남한서 뛰는 게 스트레스"



 남북 남자축구는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당시 남북은 연장전까지 득점 없이 비겼고 대회 규정에 따라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36년 만에 아시안게임 우승을 놓고 대결하는 이번에는 무승부가 없다. 남북 모두에게 얄궂은 운명이다.



 경기만큼이나 응원전이 뜨거웠다. 준결승전이 열리는 동안 ‘새터민 정거장’이라는 인터넷 카페엔 탈북자들의 응원글이 계속 올라왔다. ‘(남북이) 사이 좋게 금메달 나눠먹기’ ‘한국이 북한과 멋진 결승전을 벌였으면 좋겠네요’ ‘여자축구는 북한 금메달, 남자축구는 남한 금메달. 남남북녀, 에헤라디야’ 등의 내용이었다. ‘스포츠는 정치와 별개인데 남북 단일팀을 구성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글도 올라왔다.



 오프라인에서도 응원전이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남북한이 만난 여자축구 준결승. 문학경기장에는 북한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꾸려진 남북공동응원단 1000여 명이 한반도기를 힘차게 흔들었다. 지난 7월 발족한 남북공동응원단은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북한 응원단이 참가하면 합동 응원을 펼칠 계획이었지만 이들이 불참해 탈북자들이 여기에 포함됐다.



 탈북자들에겐 북한 선수들의 활약이 반가우면서 걱정도 되는 모양이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탈북자 김모(50)씨는 3년 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다. 후반 추가시간에 북한 허은별의 결승골이 터지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김씨는 “여자 축구는 북한의 실력이 월등하다”며 “기분이 묘했다. 양쪽을 다 응원했지만 솔직히 북한이 이기길 바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유를 찾아 고향을 떠나왔지만 여전히 그곳이 그립다고 했다. 그는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니 기분이 좋았다”며 웃었다.



오른쪽은 북한 정일관(왼쪽 셋째)이 4강전에서 연장 전반 결승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모습. [인천=강정현 기자], [뉴시스]


 탈북자 중 일부는 선글라스를 끼고 관전했다. 응원단 관계자는 “보안상 얼굴이 알려지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고 귀띔했다. 후반 28분 0-0 균형을 깨는 북한의 골이 터지자 응원단은 축제 분위기가 됐다. 경기가 1-0 북한의 승리로 끝나자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은 체조·유도·축구·레슬링·역도 등에서 남한과 맞대결을 펼쳤다. 김씨는 “남과 북이 경쟁하는 모습을 경기장에서 직접 보는 날이 올지 상상도 못했다”며 “정권과 사상이 나쁘지 선수들이 무슨 죄가 있나. 선수들을 향한 연민의 정은 속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여자 축구 결승전에도 꼭 오겠다는 그는 “일본과의 대결은 남북을 떠나 한반도 전체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탈북자는 “경기장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걱정했다. 자신이 탈북자임을 밝히는 것조차 꺼렸다. 다른 탈북자들도 대부분 대답을 회피했고 인터뷰에 응해도 실명이 거론되는 건 싫어했다.



 성균관대에 다니는 탈북자 조모(32)씨는 “북한 선수들이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좋은 성적을 못 내면 여러 가지 총화(회의)를 통해 몸과 마음이 지칠 텐데…”라며 “남한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만나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려주고 싶다”고도 했다.



인천=김원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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