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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시각각 ] 대리기사 나비효과

중앙일보 2014.09.30 00:31 종합 34면 지면보기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지난주, 이번주 글감을 고민하다 칼럼 제목을 이렇게 다는 상상을 했다.



 ‘대리기사가 세월호 협상을 바꾸다!’



 9월 17일 발생한 세월호 가족대책위 유가족들과 대리기사의 음주폭행 시비. 안타까운 일이다. 자식 잃은 세월호 유족을 비난하려 이 얘기를 꺼내는 건 아니다. 폭행사건이 몰고온 파장을 주목해서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간부들이 사과하고 물러났다. 새 지도부가 등장했다. 유족들이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기소권을 갖는 문제에 여지를 두는 분위기다.



 세월호 협상의 난제는 ‘대통령의 가이드라인’과 수사권·기소권 문제에 대한 ‘유가족의 동의’라는 두 개의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런데 이 우발적인 사건이 한쪽 라인을 완화시킬 수도 있어 보인다.



 ‘대리기사가 묘한 고비에 등장해 묘한 방식으로 협상이 전진하는건가!’ 싶었다.



 종종 우연이 역사를 바꾼다. 얼른 생각나는 역사적 사건이 고려 인종 때 문신 김돈중(김부식의 아들)이 궁중연회 도중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장난 삼아 태운 일이다. 이 사건은 결국 정변으로 이어져 무신천하를 열었다. 사라예보의 총성(오스트리아 황태자와 황비를 세르비아 청년이 암살한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이런 대형사건이 아니더라도 대리기사 폭행사건 같은 일이 처음은 아니다.



근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건’이 있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이던 2011년 10월 26일. 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이란 걸 받아 먹통이 됐다.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투표소를 찾으려던 유권자들을 방해하려는 목적이었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비서 소행으로 밝혀졌다. 2012년 4월 총선을 넉 달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사건도 돌출성이었지만 사건의 전개 과정 또한 아래와 같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야당, 배후설로 정국 주도권→특검 도입(결과는 ‘배후 없음’)→한나라당 위기감 고조→박근혜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새누리당으로 변신, 공천 때 현역 의원 대폭 물갈이→야당 대세론 안주, 공천 개혁 실패→총선, 새누리당 승리.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미세한 변화가 증폭돼 엉뚱한 결과를 나타낸다는 ‘나비효과’를 연상케 한 결과다.



 이번 대리기사 폭행사건→세월호 유가족 지도부 사퇴→수사권·기소권 입장 완화. 다음엔 어떤 수순일까. ‘야당의 국회 복귀’를 그려본다. 물론 희망사항이다. 국면이 바뀌려면 두 가지 길뿐이다. 정국을 풀 능동적인 모습을 여당이 ‘조금’ 더 보이거나 야당이 ‘먼저’ 보이는 거다.



 1971년 3월.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동교동 자택 앞에서 폭발물이 터졌다. 야당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국회를 마비시키고 거리로 나갔을까. 놀랍게도 신민당이 취한 일이 임시국회(76회) 소집이었다. 여당(공화당)…회기(30일)가 다 지나 국회가 자동 폐회할 때까지 하루도 출석하지 않았다. 72년엔 6월까지 세 차례나 야당이 단독국회를 소집했다. 공화당은 번번이 출석을 안 했다. 새누리당이 단독국회를 소집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이 불응하는 지금과는 정반대 양상이다. 야당이 국회를 버리고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한 건 유신과 5공 정권을 지나면서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이 유신시대인가 5공인가. 야당은 선배들이 왜 단독국회라도 소집하려 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밖에서 빙빙 돌며 챙긴 실익은 뭔지도.



 야당이 국회로 들어온다면 여당도 유연해져야 한다. 복잡하게 계산하는 쪽은 지는 게임이다. 누가 상대를 더 치명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겨뤄서 이긴들 얻는 건 뭔가. 누구 뚝심이 더 센지 겨룰 땐 양보하는 쪽이 이긴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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