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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 청소하는 황제의 부인 … 그나마도 일자리 못 구해

중앙선데이 2014.09.28 03:01 394호 29면 지면보기
1956년 12월 초, 중공은 푸이를 석방하며 베이징에 거주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베이징으로 가기 위해 열차에 오른 푸이. [사진 김명호]
황제건 뭐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가련한 인생이긴 마찬가지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자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부의)는 피신처를 물색했다. 갈 곳이라곤 일본밖에 없었다. 4일 후 일본 관동군은 일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선양(瀋陽) 공항에 도착한 푸이를 소련측에 넘겼다. 소련군은 중국의 마지막 황제를 시베리아로 압송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93>

황후 완룽(婉容·완용)과 네 번째 부인 리위친(李玉琴·이옥금)은 조선이 빤히 보이는 린장(臨江) 언저리에서 팔로군(八路軍) 소속 조선족 부대와 조우했다. 팔로군은 리위친을 가족들이 있는 창춘(長春)으로 가라며 풀어줬다.

리위친은 창춘으로 가지 않았다. 톈진(天津)에 있는 청 황실의 후예를 찾아갔다. 몰락한 3류 황족은 리위친을 창고에 가둬버렸다. 옷도 제대로 입히지 않고, 밥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줬다 “너는 황제의 귀인이다. 외간 남자의 눈에 띄면 안된다. 세수도 하지 말고, 머리에 빗질도 하지 마라. 잘 먹고 몸단장 하다 보면 딴 생각 할 나이다.”

국공전쟁에서 승리한 중공이 톈진에 입성하자 리위친은 황족의 집을 빠져 나왔다. 부모가 있는 창춘에 와 보니 친정은 엉망이었다. 쓰러져가는 집에 오빠는 빈털터리였고, 올케와 조카는 폐병과 뇌막염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리위친은 일자리를 찾았다. “시(市) 노동국은 내 신분을 알고 있었다. 변변한 직장을 알선해주지 않았다. 식품 공장에서 땅콩 까는 일과 사탕 포장, 변소 청소, 인쇄 노동자가 고작이었지만 길어야 한달, 거의 며칠만에 쫓겨났다.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직장 동료들은 “한간(漢奸)의 부인, 반혁명 가족, 아직 결혼하지 않고 버티는 것을 보니 만주국이 다시 수립되기를 기다리는 눈치”라며 리위친을 조롱했다.

리위친은 말이 부부지, 노예나 다름없던 황궁 시절이 새삼 그리웠다. 생사 불명인 남편의 소재를 찾아 나섰다. 54년 여름, 겨우 여비를 마련해 베이징으로 갔다. 푸이의 다섯째 여동생 집에 여장을 풀고 중앙인민정부를 찾아갔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주석과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총리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일단 서면으로 이유를 작성해라. 우리가 책임지고 전달하겠다”는 답변을 듣고 시키는 대로 했지만, 며칠을 기다려도 정부의 회신은 없었다. 돈이 떨어진 리위친은 창춘으로 돌아왔다.

푸이에 관한 온갖 소문이 파다했다. 동북 토박이 친구들은 푸이를 기다리지 말라고 리위친에게 권했다. “한간들은 처형되거나 감옥에 갇혀 있다. 푸이는 한간의 우두머리였다. 아직 소련에 있다 해도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 푸이와 이혼을 하겠다고 발표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푸이를 몇 차례 면회한 후 이혼을 결심한 리위친.
리위친의 모친은 완고했다. “너는 캉더(康德·만주국 황제 시절, 푸이의 연호)의 여자다. 어디에 있건, 살아만 있다면 기다리는 게 옳다.”

푸이도 리위친을 잊지 않았다. 한때 리위친이 결혼했다는 소문을 듣고 실망한 적이 있었지만 소문을 믿지 않았다. 55년 6월 중국인 전범들에게 서신왕래가 허락되자 “친애하는 리위친”으로 시작되는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위친의 답장도 첫머리가 “친애하는 푸이”였다. “10년 간 연락 오기를 기다렸다. 면회가 가능하면 당장 달려가겠다”는 구절을 발견하자 푸이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았다. 전범관리소 측에 면회를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범관리소는 푸이의 청을 들어줬다. 조선족 소장 김원(金原)의 명의로 “방문을 환영한다”는 편지를 리위친에게 보냈다. 위치를 그린 약도까지 첨부했다.

리위친은 준비를 서둘렀다. 사탕 두 봉지와 헝겊신발 한 켤레를 장만했다. 푸순(撫順)에 가려면 선양을 경유해야 했다. 당시 선양 역전은 조무래기 좀도둑들의 천하였다. 리위친은 싸구려 여관방에서 사탕과 신발을 품에 끼고 잠을 잤다. 새벽녘에 말라 비틀어진 빵 두개를 사먹고 푸순행 열차를 탔다.

8월 16일 오전 푸순전범관리소 소장 부인 정영순(鄭英順)은 관리소 문전을 서성이는 여인을 발견했다. 훗날 구술을 남겼다. “허름한 농촌 부녀자 모습이었다. 남편 푸이를 만나러 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경비실에 달려가 소장실에 전화를 했다. 여인은 내게 조선족이냐고 물었다. 소장도 그렇다고 하자 10년 전 이맘때 린장에서 조선족 군인들을 만난 적이 있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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