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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들어가면 물 반, 메달 반

중앙일보 2014.09.26 01:24 종합 26면 지면보기
박태환이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전 직후 열린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박태환은 결승전에서 50m 구간까지는 4위에 머물렀지만 막판 스퍼트로 중국의 닝제타오(47초70)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인천=정시종 기자]


박태환(25·인천시청)의 아시안게임 통산 19번째 메달은 은빛이었다. 박태환은 사격의 박병택(48·금 5, 은 8, 동 6개)과 함께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한국인이 됐다.

마린보이, 자유형 100m 은메달
아시안게임 19개, 한국 최다 타이
자유형 1500m, 혼계영 400m 남아
금 6·은 4·동 9개 … 신기록 세울듯



 박태환은 25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서 48초75로 은메달을 땄다. 레이스 초반 닝제타오(중국·47초70)와 벌어진 거리를 차츰 좁혔지만 역전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3위는 시우라 신리(일본·48초85)가 차지했다.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쑨양(중국)·하기노 고스케(일본)와 ‘한중일 삼국지’를 형성했던 박태환은 100m에선 다른 선수들과 한중일 대결을 벌였다.



 박태환은 “아무리 잘한 레이스도 끝난 뒤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며 “닝제타오가 스키니한 것 같은데(말랐다는 의미) 파워가 뛰어나 놀랐다”고 상대를 추켜세웠다. 또 “시우라 선수도 잘했다. 한중일 선수들이 100m에서 레이스를 펼친 게 처음인 것 같은데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이들과 함께 레이스를 뛰는 것은 내게 축복이었다. 경쟁보다는 같이 레이스를 벌이는 자체가 좋았다. 이들과 같이 시상대에 서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부터 아시아 수영을 주도해 온 그는 이제 ‘한국인 박태환’을 넘어 ‘아시아인 박태환’ 같은 느낌을 줬다.



 박태환은 만 17세 나이에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자유형 200·400·1500m)에 올랐다. 2008 베이징올림픽 400m 금메달을 딴 그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장린과 쑨양의 추격을 따돌리고 다시 3관왕(자유형 100·200·400m)을 차지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쑨양에게 추격을 허용한 그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젊은 선수들과 경쟁했다. 200m·400m에서는 고스케와 쑨양에 밀려 동메달을 땄다. 계영 400m와 800m에서는 후배들과 동메달을 합작했다. 세 차례 아시안게임은 박태환에게 도전과 성취, 그리고 재도전의 연속이었다. 그 끝에서 그는 아시안게임 19개 메달(금 6개·은 4개·동 9개)을 쓸어담았다.



 인터뷰 중 중국 기자가 박태환에게 “대한수영연맹과 불편한 관계라고 들었다. 쇼트트랙 안현수도 (대한빙상경기연맹과의 불화로)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됐다”며 엉뚱한 질문을 했다. 박태환은 “연맹과 문제가 없다. 아시안게임 선발전도 한국에서 뛰었다”고 일축했다. 연맹과 마찰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제 박태환은 서운함이나 갈등구조를 뛰어넘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미안하다”, “감사한다”. “많이 배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그는 도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21일부터 매일 경기에 나서며 메달을 하루 하나씩 따내고 있다. 박태환은 26일 혼계영 400m와 자유형 1500m에 출전해 메달 추가에 도전한다. 혼계영 400m에선 일본이 워낙 강하고, 자유형 1500m는 쑨양이 독주해 온 종목이다. 그래도 박태환은 “혼계영은 동료들과 함께 뛰는 종목이라 의미가 있다.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면서 “1500m도 세계적인 선수인 쑨양을 따라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웃었다.



인천=김식 기자

사진=정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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