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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0원 300건 확인 … 열량계 조작 가능성 수사

중앙일보 2014.09.22 01:54 종합 10면 지면보기
배우 김부선(53·사진)씨가 이웃과의 폭행사건 후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성동구 A아파트 일부 가구의 난방비가 0원”이라고 밝힌 것을 계기로 아파트 관리비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씨는 지난 12일 이웃 주민 폭행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보도되자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입주민 중에 한 달 난방비를 한 푼도 안 내거나 100원, 200원씩만 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바로잡으려고 한 것 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17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10년 동안 난방(비) 비리를 바로잡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으나 좌절됐다. 누군가 해야 되는 일이라면 내가 기꺼이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작년 조사 … 시정명령 내려
동대표측 "기계고장 … 비리 아니다"
성동경찰서 넉달간 수사 안해 논란

 김씨의 ‘0원 난방비’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서울시의 A아파트 난방비 부과 실태 조사에서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현재 주민들의 열량계 조작 등 비리 여부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2007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를 대상으로 한 당시 실태 조사에서 한겨울에 ‘0원’이 나온 300건이 확인됐다. 가구당 난방비가 9만원 이하인 사례도 2398건이었다고 한다. 시는 지난해 말 성동구청장에게 시정하라고 통보했다. 성동구청은 지난 5월 성동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 성동구 A아파트에 설치된 열량계. 난방 사용량을 측정하는 기기로 내부의 배터리를 빼면 작동하지 않는다. 경찰은 일부 가구의 열량계를 수거해 인위적 조작 여부에 대한 정밀 감정을 의뢰했다. [윤정민 기자]


 서울시에 따르면 A아파트처럼 중앙집중난방을 실시하는 아파트는 서울시 전체 아파트 중 10% 정도다. 중앙집중난방은 전체 사용량을 측정한 다음 가구별 사용량에 따라 사용료를 나누기 때문에 한 가구가 난방비를 내지 않으면 그만큼 다른 가구로 난방비가 전가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이틀 동안 A아파트를 조사했고 올해도 다른 아파트에서 유사 사례가 접수돼 조사를 했으나 A아파트처럼 다수의 열량계가 멈춰 있고 사용량이 0인 아파트 단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 의뢰건에 대해 4개월간 손을 놓고 있던 성동서는 뒤늦게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성동서 관계자는 지난 16일 “입주민들이 열량계를 조작하거나 고장을 내 난방비를 낮춘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또 가구 내 열량계의 봉인지가 훼손된 경우가 없어 조작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자 기존 입장에 변화가 생겼다. 이 관계자는 21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봉인지 훼손 사례가 없었다는 건 경찰이 직접 수사한 게 아니라 관리소와 열량계 제조업체의 진술을 듣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열량계가 돌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128가구를 상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열량계 조작과 기계 결함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0원 난방비’ 문제에 입주자대표회의가 개입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씨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지난 17년간 난방비(를) 한 푼도 안 내고 있다. 거기엔 동 대표들도 있고 아파트 선관위원장도 있다”고 적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아파트 단지 25곳을 조사했을 때도 입주자대표회의의 공금 유용 사례 등이 적발됐다. 따라서 경찰은 A아파트의 일부 주민의 비리 연루 가능성도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이 있는 사안인 만큼 신속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수사인력을 늘렸다”고 말했다.



한편 폭행사건에 연루된 한 동대표는 "외국에 나갔다든지 배터리가 고장 나는 등 사정이 있었을 뿐 난방 비리는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한 상태다. 21일 만난 A아파트 주민 정모(42)씨는 “한 달 난방비로 90만원이 나온 가구도 있었다”며 “열량계 조작이든 단순 실수든 피해를 본 가구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헌·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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