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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울 곳 제대로 알려주는 게 비흡연자 위한 배려"

중앙일보 2014.09.19 02:59 종합 8면 지면보기
흡연구역을 알려주는 스마트폰앱 ‘종이컵 재떨이’를 개발한 엔지니스트 한준상 대표가 서울 강남대로 근처 시민 쉼터에서 태블릿 PC를 들고 있다. 앱을 실행하면 흡연 가능 카페(녹색)·식당(오렌지색)·술집(빨간색)·실외 흡연 공간(보라색) 위치가 지도에 표시된다. 뒤쪽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 대표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게 비흡연자를 위한 진정한 배려”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흡연을 조장하려고 만든 건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금연 영토의 확장 <하> 흡연·혐연 공존을 위하여
'종이컵 재떨이'앱 만든 20대 4인
"골목길 몰려 피우니 행인들 괴로워"
흡연시설 갖춘 식당·술집·야외 안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개발회사인 엔지니스트 대표 한준상(29)씨가 던진 첫 마디였다. 엔지니스트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카페·음식점·실외공간을 알려 주는 앱 ‘종이컵 재떨이’를 만들어 지난해 연말 내놨다. 흡연구역을 알려 주는 앱은 종이컵 재떨이가 유일하다. 강남대로에서 앱을 실행하면 흡연시설이 갖춰진 카페 11곳과 술집 14곳, 음식점 11곳, 실외 흡연공간 6곳이 지도 위에 뜬다. 한 대표는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피우지 말고 흡연실을 제대로 갖춘 곳에서 담배를 피우자는 뜻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 점심시간이 되면 강남대로·광화문광장 이면도로 곳곳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금연 영토가 확장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풍경이다. 한 대표는 “담배 피우는 직장인 친구들이 가장 원한 게 바로 흡연 지도였다”고 말했다.





 엔지니스트는 한 대표와 안치운(27)·전용근(27)·최정선(24)씨 등 엔지니어 4명이 의기투합해 지난해 8월 창업했다. 사무실은 경기도 용인 외국어대 글로벌캠퍼스 창업보육센터에 있다. 지난 16일 들른 사무실은 단출했다. 컴퓨터 모니터 10대와 책상 5개가 전부였다. 사무실 한쪽 칸막이 너머엔 간이침대 4개가 접혀 있었다.



 안씨가 책상 서랍에서 술집과 음식점 이름이 적힌 명함 수십 장을 꺼내 들었다. 명함에 파란색 글씨가 적혀 있었다.



 ‘30평(99㎡) 이내. 올해까지 흡연 가능’ ‘흡연실 따로 있음. 아주 좁음’.



 앱으로 찾을 수 있는 흡연공간은 전국 1150곳. 이 중 600곳은 4명이 발로 뛰어 발굴했다. 창업 후 넉 달 동안 강남대로와 종로 등의 카페와 음식점을 일일이 확인했다. 단속반으로 오해받기 일쑤였다. 금연구역 지도는 많았지만 흡연구역 지도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서울시와 구청, 카페 프랜차이즈 본사 등에 연락했지만 흡연구역 지도는 없었다. 공무원들은 흡연 지도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봤다.



 하지만 이들은 금연구역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라고 주장한다. 한 대표는 “흡연 지도는 일종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흡연실이 있는 카페나 음식점을 알려 주는 게 비흡연자와 흡연자가 공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어디가 금연구역인지, 어디가 흡연구역인지를 쉽게 구분할 수 있어야죠.”



 한 대표의 설명대로 강남대로 근처엔 흡연과 금연구역이 얽혀 있는 회색지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강남역 인근 A빌딩 바로 옆 공터의 경우 ‘시민 휴식공간’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점심식사 때가 되면 직장인들이 모여 담배를 피운다. 비흡연자들은 담배 연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공터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곤 한다. 강남대로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뒤 자연스럽게 ‘스모킹 존(smoking zone)’이 돼 버렸다. 강남대로엔 이런 실외 흡연공간이 3곳 더 있다. 한 대표는 “실내·실외 흡연시설을 체계적으로 설치하고 지도를 통해 널리 알리는 것이 흡연자와 혐연자를 모두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종이컵 재떨이 앱 사용자는 5000여 명에 달한다.



한 대표 등은 일주일에 이틀씩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흡연 지도를 만들면서 금연구역의 모순점도 발견했다. 사당역 사거리가 대표적이다. 관악구는 지하철 출입구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했지만 동작·서초구는 그렇지 않다. 안씨는 “사당역 4·5·6번 출구에선 담배를 피워선 안 되지만 동작구 관할인 7·8번 출구에선 흡연을 해도 과태료를 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서초구가 버스정류장과 반경 10m 이내 공간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반면 동작구와 관악구는 버스정류장만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한 대표는 “강남대로 서쪽은 서초구, 동쪽은 강남구 관할인데 구청이 지정한 실외 흡연구역은 서쪽에만 있어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강인식 팀장, 강기헌·구혜진 기자, 공현정(이화여대 정치외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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