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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의심치 않는 진실, 그 빈틈을 파고들다

중앙일보 2014.09.19 01:47 종합 27면 지면보기
영화 ‘제보자’에서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취재하는 방송사 시사프로그램PD 윤민철 역을 맡은 박해일. 언론인 역할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역을 택했다. [사진 전소윤(STUDIO 706)]


진지하면서도 유연하다. 영화 ‘제보자’(10월 2일 개봉, 임순례 감독)에서 박해일(37)의 연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영화는 2005년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태를 모티브 삼은 픽션이다. 박해일은 방송사 시사프로그램PD 윤민철 역을 맡아 줄기세포 사건을 파헤친다. 이장환(이경영) 박사와 함께 일했던 연구원 심민호(유연석)의 제보를 받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사프로 PD역 맡은 박해일
여론과 진실 꼭 연결되지는 않아
다양한 분야 민감한 입장 고려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하려 노력



 사건의 자극적인 면면을 부각시키는 대신 시종일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며 굽이굽이 달라지는 국면을 짚는 연출이 돋보인다. 그동안 철없이 행동하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해 온 박해일의 새롭고 맞춤한 연기도 몰입도를 높인다.



 - 인물에 대한 구구절절 설명이 별로 없는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윤민철이 논문 조작 의혹을 접하고 곧장 취재에 들어간 뒤, 그 과정을 빠르고 힘 있게 밀어붙이는 구조다. 이야기가 곁가지를 뻗지 않는다. 그래서 인물을 완벽하게 구축한 상태보다는 촬영장 분위기에 최대한 몸을 맡기면서 연기하는 게 맞다고 봤다.“



 -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듯하다.



 “윤민철 혼자 극을 이끄는 구조는 아니다. 관객의 연령·직업·성향 등에 따라 제보자 심민호, 사건의 중심인물 이장환 등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따라갈 거라 판단했다. 문제의 사건을 얼마나 기억하느냐에 따라서도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그 모든 걸 고려해 윤민철을 유연하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보자’에서 윤민철(박해일)이 제보자 심민호를 인터뷰하는 장면.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
 - 모든 것을 걸고라도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윤민철이 마음먹은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런 순간이 있었다기보다는 이런 게 아닐까. 국민 모두 환호를 보내고 믿어 의심치 않는 진실에서 작은 틈을 목격했는데, 그 틈이 점점 벌어지는 게 보이는 거다. 이런 틈이 왜 생겼고, 누가 만들었고, 어디까지 번질 것인지,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하나의 의혹이 풀리는가 싶으면 또 다른 의혹이 나타나고, 또 다른 쟁점이 튀어나온다. 그걸 따라가다 보니 윤민철도 멈출 수 없었던 게 아닐까.”



 - 영화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이후 13년 만에 임순례 감독과 다시 만났는데.



 “감독님의 다른 영화처럼 ‘제보자’도 등장인물들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특히 이 영화는 전문용어나 개념을 설명할 게 많고, 언론계·학계·정계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감한 입장을 객관적으로 전해야 했다. 그 모든 걸 깔끔하게 해내는 걸 보고 감독님의 연출력이 더 깊어졌다고 느꼈다.”



 - 언론의 역할에 무게중심이 실린 영화인데.



 “감독님도 나도 이 영화가 소명을 다하는 언론인들에게 헌사를 바치는 작품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허튼짓이 된다(웃음). 극 중에서 여론과 진실이 꼭 연결되는 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와도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론의 역할과 함께 대중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 윤민철이 방송사 사장 앞에서 방송 윤리강령을 외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배우에게도 윤리강령이 있다면.



 “그런 건 배우협회에서 수첩을 만들어 맨 앞장에 써서 나눠주면 좋을 텐데(웃음). 내가 이야기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연기라는 걸 깨달아가는 과정이라서. 다만 연극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어떤 선배가 내게 왜 연기를 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더니 그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결국 인간이 되기 위해 하는 게 아니겠냐고. 그 말씀이 가끔 생각난다.”



장성란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김세윤 영화저널리스트) : ‘오보’가 키우고 ‘제보’가 무너뜨린 괴물.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실화가 충분히 영화였으므로.



★★★☆(이은선 기자) : 어쩌면 지금 이 사회가 가장 목마른 가치인 진실에 관하여. 섣부른 선동 대신 명확한 관점과 명쾌한 극적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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