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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그 좋다는 골든타임, 개업 대신 연수

중앙일보 2014.09.19 01:39 종합 29면 지면보기
퇴직 후 1년. 고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에게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기간이다. 가장 많은 의뢰인과 사건이 몰려서다. 그러나 서울 동부지검장을 끝으로 지난해 4월 검찰을 떠난 한명관(55·사법연수원 15기·사진) 변호사는 프랑스 회화책부터 집어 들었다. ‘수임료만 몇십억 벌었다더라’ ‘재벌가의 형사사건을 싹쓸이 했다더라’ 등 퇴직 후 바로 개업한 이들의 소문이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대사관과 도서관을 분주하게 오가며 준비한 끝에 같은해 7월 프랑스 연수를 떠났다. 그는 1년 동안 프랑스 법무부 부패방지국과 대검찰청에서 남다른 ‘골든타임’을 보냈다. 지난달 귀국한 그가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로 새 출발한다. 한 변호사는 1989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대전지검장, 법무부 법무실장, 수원지검장 등을 지냈다.


한명관 전 서울 동부지검장
"이때 아니면 재충전 못할 뻔"

 - 프랑스 검찰 수사에 직접 참관했다.



 “우리나라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해당하는 파리지법 중요경제범죄 거점수사부가 진행 중인 적도기니 대통령 아들(테오도로 엔게마 오병 망게)에 대한 수사에 참관했다. 실제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참고인 신문에도 참여했다. 수사는 2007년 시작됐다. 엔게마는 국영사업을 하면서 3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챙겨 프랑스에 방 101개짜리 호화 아파트를 구입하고 미술·조각품, 포도주, 호화 자동차 구입에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페라리 등 최고급 승용차만 20여 대 갖고 있다. 횡령금을 프랑스로 들여오는 데 프랑스 은행인 소시에떼 제네랄이 관여한 정황이 나와 윗선을 추적해 올라갔다.”



 - 한국 검찰의 수사방식과 차이는.



 “비슷하다. 계좌추적 등을 통해 수상한 자금흐름을 파악한뒤 관련자를 소환해 신문한다. 지난 6월 로제 르 르와르 수사판사와 함께 프랑스 은행의 적도기니 현지 지점장 크리스티앙 델마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핵심증언이 나왔다. 계속된 추궁에 델마가 ‘윗선에 엔게마의 횡령에 악용되는 정황을 보고하고 폐쇄를 건의했는데 상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진술할 때는 짜릿했다. 소시에떼 제네랄의 상층부까지 거액 횡령사건에 연루됐다는 취지였다. 사건 수사가 끝나기 전에 연수기간이 종료돼 귀국한 게 아쉽다.”



 - 변호사 개업 대신 자비 연수를 택했다.



 “현직에 있던 24년간 쉼없이 달려왔는데 바로 개업하면 너무 소모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직의 긴 여정을 생각해 볼 때 여기서 재충전하지 않으면 앞으로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돈도 중요하지만 선진국의 사법 시스템과 제도들을 지켜볼 기회가 변호사를 시작하면 영영 없을 거라고 봤다. 또 20년 전 평검사 시절 1년간의 프랑스 연수 때 미진했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크기도 했다. 가족을 포함해 주변에서 말렸지만 아내와 긴 시간 함께 보내는 등 무형의 소득이 컸다.”



 - 프랑스 사법제도에서 인상적인 점은.



 “인사제도다. 고위직 인사를 하게 되면 최고 사법관회의가 지원자를 받는다. 예컨대 낭트지방법원장이라고 하면 20여 명이 지원을 한다. 지원자들은 내부 인트라넷에 자신의 포부 등을 밝힌다. 재미있는 게 그들이 올린 글에 동료, 선·후배 법관들이 댓글을 단다. 위원회만 볼 수 있는 이 의견을 중요한 인사요소로 고려해 최종적으로 적격자를 선발한다. 윗사람을 보고 일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보고 공익을 보고 일하게 만드는 장치다. 윗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국내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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