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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조짐 무시한 미국, 낡은 관념 깨야 미래 보인다

중앙일보 2014.09.19 01:27 종합 31면 지면보기
소설 『삼국지』에서 오나라 손권이 자신의 누이 동생과의 혼담을 미끼로 촉의 유비를 불러 들인다. 호위를 맡은 조운에게 제갈량이 비단 주머니 세 개를 준다. 조운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비단주머니 속 계책을 꺼내 유비가 무사히 촉으로 돌아가게 했다. 이 얘기에서 비롯한 ‘금낭묘계(錦囊妙計)’의 지혜를 요즘 전 세계 정부들이 좇고 있다. 싱가포르가 가장 열심이다.


추록핀 싱가포르 위기평가·환경탐색 센터장

추록핀(사진) 싱가포르 위기평가·환경탐색(RAHS) 센터장은 18일 “사회의 다변화와 SNS의 발달로 인터넷 루머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미래창조과학부·한국정보화진흥원의 ‘데이터 기반 미래전략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지난해 3월 백악관 폭발 사고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쳤다는 오보가 AP 통신사의 트윗을 통해 퍼진 뒤 주가가 폭락했던 사례를 들었다. 이는 해커 집단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추 센터장은 “소문과 근거 없는 믿음이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많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4년부터 RAHS를 운영했다. 2012년엔 총리실 산하 별도 정부기관으로 만들었다. 2001년 9·11 테러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를 지켜 보면서 미래 위험의 선제적 파악과 장기적 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추 센터장은 “수많은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국가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초를 가려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그러려면 관성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3년부터 9·11 테러를 예견할 만한 조짐들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 미 연방수사국(FBI)은 테러 직전인 2001년 7월 테러리스트들이 비행 훈련 중인 사실을 파악하고도 놓쳤다. 그는 “당시 미국은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예상치 못한 테러가 일어날 줄 꿈도 못 꿨었다”고 분석했다.



 RAHS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사람의 상상력을 더 높이 쳐준다고 한다. 크라우드 소싱(대중에게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는 방법)도 활용한다. 추 센터장은 “매일 쏟아지는 정보 중 전혀 주목받지 않던 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걸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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