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를 흔든 시 한 줄] 박경철 의사·저술가

중앙일보 2014.09.19 00:51 종합 36면 지면보기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분투한 삶의 상징인 흰 연탄재
굴하지 않는 인생 모두가 소중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1961~ )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겨울방학이 시작되던 22살 겨울,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무방비 상태에서 가족을 덮친 가장(家長)의 부재는 엄청난 충격과 혼란으로 다가왔다. 망연자실 학교 주변을 서성거리다 들어선 서점에서 운명처럼 책 한 권을 만났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수난』이었다. ‘수난’이란 제목은 땅에 떨어진 새처럼 몸을 떨고 있던 당시 내 처지에 섬광처럼 강렬했다.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며 결코 굴하지 않으리니’라는 앨프레드 테니슨의 ‘율리시즈’를 좋아한 카잔차키스는 어떤 난관과 고통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자 인문 정신이라 늘 말했다.



 이 시를 보는 순간, 그 양반이 되풀이 강조한 분투의 결과가 바로 하얗게 탄 연탄재가 아닌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흰 재야말로 ‘찬란한 끝장’이라 말하는 시인의 해석이 인생의 속내가 아닌가 싶었다. 삶에는 각자의 의미가 있다. 어느 부엌에서 고등어를 구웠건, 어느 집 아기의 따뜻한 겨울을 위해 구들장을 데웠건, 연탄재 하나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 사연 하나하나가 바로 우리네의 소중한 삶이 아니던가.



박경철 의사·저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