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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방대학 지원한 A군의 선택이 뜻깊은 이유

중앙일보 2014.09.19 00:43 종합 37면 지면보기
정영길
건양대 행정부총장(의학)
추석 연휴 때 고향을 방문하면서 뒤숭숭한 요즘 세상에 대한 친지들의 흥미진진한 논쟁을 살짝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번 연휴기간 동안 가장 화제가 됐던 대화의 주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이번 2015학년도 대학입시를 앞두고 수도권이 아닌 지방대학에 입학하겠다고 선언한 조카 A군에 관한 것이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조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지는 못한다. 듣기로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반장도 하고 공부도 꽤 잘해서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한 뒤 성적이 떨어져 애를 태우더니 고등학교에 가서 상당히 만회를 해서 반에서 상위권에 이르게 됐다. 이에 부모는 내심 서울 또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A군은 지방에 있는 어떤 대학의 특정학과를 선택해 그곳에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수도권 대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부모는 아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A군은 오히려 자신이 왜 그 대학, 그 학과를 선택했는지 분명한 논리를 밝히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평소 왕래가 많지 않아 잘 알지 못했던 조카 A군의 선택이 아직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그럼에도 도저히 깨질 것 같지 않던 수도권 중심의 견고한 대학구조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성세대에 비해 일찌감치 현실에 눈 뜬 학생들은 이제 대학 간판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더 잘 안다. 일찍 철이 든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하고 싶은 목표를 명확히 정해 대학 간판보다는 학과 선택에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대선 때 고등교육정책 4대 중점 과제 중 하나로 지방대 육성 방안을 설정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문민정부 때부터 지방대 육성방안이 논의돼 왔지만 현 정부 들어 법제화된 것이다. 이런 법률이 제정되면서 지역과 지역대학에서는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필자가 소속한 대학도 이번 입시에서 의과대학 입학정원의 51%를 우리 지역 인재에 할당해서 뽑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올 초부터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이 전면 시행됐다. 80개 지방대학에 265개의 사업단을 선정해 2031억원을 지원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특성화사업에 선정된 우수한 학과를 명품학과로 선정해 집중 지원한다고 한다. 지방대학에 대한 정부의 힘 싣기가 앞으로 점점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지역대학의 구조개혁도 진행되고 있다. 학생수 감소에 따른 고등교육의 질 관리를 위해 대학평가를 통해 향후 10년간 16만 명의 대입정원을 줄이는 사상 초유의 대학구조개혁이 눈앞에 와 있다. 전체 고등교육의 생태계를 볼 때 대학 입장에선 고통스럽겠지만 장기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대학들, 특히 지방대학은 이번 기회를 정말 잘 살려 나가야 한다. 지방대학이 지역차별의 극심한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충분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이제 지방대학 육성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또 대학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향후 5년간 국비가 실제로 지원된다. 지방대학이 발전할 수 있는 무대가 펼쳐진 만큼 이제는 대학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관객들을 감동시켜야 할 때다. 그래야 더 많은 A군들이 지방대학에 지원할 것이고 이를 통해 지방대학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각 지역별로 손꼽히는 명문대들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 대학들이 지역의 교육은 물론 경제·사회·문화의 구심점이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학의 성장을 더욱 촉진하는 순작용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미 일부 지방대학들은 지역 산업 현장 여건에 맞춘 특성화된 교육→높은 취업률→높은 진학 경쟁률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에 접어들었다.



 다행스럽게 여러 지방대학들과 정부의 노력이 합쳐져 일단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조카 A군의 선택에서처럼 최근 발표된 대학 취업률에서도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취업률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초로 지방대학 취업률이 수도권 대학을 앞지른 것이다. 교육부가 공개한 대졸 취업률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수도권 소재 대학 53%, 지방 대학 51.3%였던 취업률은 올 들어 54.3%(수도권) 대 55.1%(지방)로 역전됐다. 취업률이 높은 대학 20곳 가운데 수도권 대학은 5곳에 불과한 반면 지방 대학들이 15곳을 차지했다.



 그 차이는 크지 않지만 의미는 깊다. 변화는 항상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작은 변화가 지방대학에 정말 좋은 기회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는 지방대학은 물론 지방과 우리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지방대학이 살아야 지방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지역 기업들도 좋은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성장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영길 건양대 행정부총장(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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