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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미친 또라이가 온다…‘세븐 싸이코패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9.19 00:02



[매거진M] 이런 희한한 스릴러를 봤나…‘세븐 싸이코패스’

























영화 제목이 ‘세븐 싸이코패스’(원제 Seven Psychopaths, 9월 18일 개봉, 마틴 맥도나 감독)라면, 혹시 화끈한 액션이나 치밀한 범죄 스릴러를 떠올릴지 모른다. 한데 이 영화, 보란듯이 예상을 깨뜨리며 비쭉 비쭉 옆길로 새고 뒤통수를 친다. ‘세븐 싸이코패스’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전작 ‘킬러들의 도시’(2008)보다 한층 세련된 블랙 코미디다. 특히 주연 배우 4명의 열연이 도드라진다. 이들의 캐릭터를 살려 각각 단편영화로 만들어도 좋다 싶을 정도다.



마틴 맥도나는 국내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영국에선 극작가로 이름을 알린 지 오래다. 2007년 최민식이 주연해 호평 받은 연극 ‘필로우맨’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강렬한 캐릭터, 은유로 가득한 대사로 정평이 난 마틴 맥도나는 2008년 ‘킬러들의 도시’로 영화계에까지 발을 디뎠다. 이 데뷔작으로 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영국 아카데미상에선 각본상을 받았다. ‘세븐 싸이코패스’는 마틴 맥도나의 두번째 연출작. 우울하고 음산한 분위기는 전작보다 덜하지만 예상을 뒤엎는 전개의 블랙 코미디란 점에선 변함이 없다.



시나리오 작가 마티(콜린 파렐)는 일곱 명의 싸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영화를 구상 중이다. 하지만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시간만 죽이고 있다. 보다 못한 그의 친구 빌리(샘 록웰)가 싸이코패스를 모집한다는 신문 공고를 내고, 며칠 후 자신을 싸이코패스라고 밝힌 한 남자가 이들을 찾아온다. 괜찮은 이야깃거리를 건질 수 있을까 마티의 눈빛이 반짝인 것도 잠시, 그와 빌리에게 위기가 닥친다. 개를 납치해 주인에게 돌려주고 사례

금을 받아 챙겨왔던 빌리가 갱단 보스 찰리(우디 해럴슨)의 개를 훔친 것이다. 마티와 빌리, 그리고 빌리의 사업 파트너 한스(크리스토퍼 월켄)는 찰리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곧 흥미진진하고 급박한 사건이 터질 것 같은데, 이야기는 딴 길로 새기 시작한다. “배우들이 모두 사막으로 가서 영화 끝날 때까지 수다만 떠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들은 사막으로 도망치는데, 정말 수다만 떤다. 그러다 빌리가 제멋대로 지어낸 이야기가 눈앞의 현실로 하나둘 다가올 때면 관객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대체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현실인 걸까. 이렇게 허구와 현실을 묘하게 섞어놓은 이 이야기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맛이 꽤 쏠쏠하다.



뭣보다 마티, 빌리, 한스, 찰리 이 네 사람과 그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를 쓸 때,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한다. 그 영역만큼은 연극을 해오며 내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세븐 싸이코패스’는 아주 커다란 퍼즐 같았다.” 주인공 마티를 연기한 콜린 파렐은 “캐릭터의 뉘앙스가 굉장히 세밀하게 살아 있어 끌렸다”고 고백했다. 우울하고 나른한 분위기에 끼어드는 허무 개그가 웃음을 주는 것도, 각 캐릭터가 탄탄히 구축한 매력 덕이다.



‘또라이’라 불러도 무방할 이 네 사람을 찬찬히 바라다보면 싸이코패스를 그려 온 수많은 영화에 의문을 품게 된다. 전작 ‘킬러들의 도시’에서 킬러의 인간미를 조명했던 맥도나 감독이 이번엔 싸이코패스를 향해 그같은 시선을 뒀기 때문이다. 영화 속 싸이코패스들에게는 모두 사연이 있고, 그 연유를 듣다 보면 동조하진 못할지라도 미워할 수는 없게 된다. “싸이코패스란, 어쩌면 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며 “이 영화에서 누가 싸이코패스이고 아닌지를 맞히는 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이란 게 감독의 말이다. 그러니 “할리우드식의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는 지겹다”는 마티의 대사를 기억해둘 것. 이 슬프고 기괴하며 어처구니없이 웃긴 영화의 핵심이니까 말이다.



누가 진짜 돌+아이 일까



우울한 또라이 │ 콜린 파렐(38)




아일랜드 출신의 이 배우는 ‘송충이 눈썹’이 큰 매력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토탈 리콜’(2012, 렌 와이즈먼

감독) 등 블록버스터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2011, 세스 고든 감독) 류의 코미디에도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가 가장 돋보이는 건 약간 찌질하고 우울한 인물을 연기할 때다. 어딘지 모르게 감싸주고 싶었던 킬러 레이(‘킬러들의 도시’)가 그랬다.



극 중에서 글이 안 써진다는 이유로 하고많은 날 술을 마시는 마티. 싸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폭력적이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다. 이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티 주변에는 싸이코패스가 줄줄이 모여든다. 당최 웃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우울증 환자.



얄미운 또라이 │ 샘 록웰(46)



왠지 모르게 얄밉고 뻔뻔해 보이지만 아주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해왔고, 그럴 때 가장 빛난다. 그렇다고 샘 록웰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고립된 우주비행사로 등장해서 홀로 극 전체를 이끌며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다 꺼내 보였던 ‘더 문’(2009, 던칸 존스 감독)과 같은 작품도 여럿이다.



극 중에서 빌리는 무명 배우다. 오디션에서 감독에게 주먹질을 할 만큼 철이 없고,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얄밉다. 부업으로 강아지 납치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빌리야말로 또라이 중 으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떻게든 친구 마티의 시나리오 작업을 돕고 싶어하지만, ‘사랑과 평화’ 운운하는 마티가 마뜩잖다. “사랑과 평화는 망할! 싸이코패스가 7명이나 나오는데!”



진지한 또라이 │ 크리스토퍼 월켄(71)



존재만으로도 극에 안정감을 주는 노장 배우의 이력은 ‘디어 헌터’(1978, 마이클 치미노 감독)까지 거슬러간다. 베트남 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된 병사 닉을 연기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서 프랭크(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아버지 역으로도 친근하다. 마틴 맥도나 감독과는 브로드웨이 연극 ‘어 비핸딩 인 스포케인’으로 함께한 사이.



극 중에서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한스. 폭력을 혐오하는 그를 싸이코패스라 상상하긴 힘들다. 하지만 한 번 찍은 상대에겐 ‘지옥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정신으로 집착하고, 그게 웃음을 유발한다. 아내를 잃은 후 내내 멍한 표정이지만, 마티의 시나리오에 결정적 도움을 준다. 항상 목에 두르고 있는 스카프의 비밀을 확인할 것.



귀여운 또라이 │ 우디 해럴슨(53)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는 역할부터 얼빠진 인물까지 두루 소화해 왔다. 최근 ‘헝거게임’ 시리즈(2012~)에서 캣니스(제니퍼 로렌스)의 멘토 헤이미치로 출연해 보여준 슬픔에 빠진 마초의 모습도 좋았지만, 거칠면서도 귀여운 남자를 연기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 ‘좀비랜드’(2009, 루벤 플레셔 감독)의 탤러해시처럼.



극 중에서 찰리는 섹시한 애인보다 강아지 보니를 더 사랑한다. 보니를 괴롭히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총으로 쏴 죽이지만, 길 잃은 강아지를 보면 측은해서 견디지 못한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면이 많은 인물. 해골 무늬가 있는 총을 너무 좋아해서, 잘 작동되지 않는데도 그것만 쓴다. 총을 바꾸라는 부하들의 충언에 “예쁘잖아”라는 말로 응수. 그 집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유심히 지켜보시길.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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