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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대 겨냥 8년 공들였다 … 영어대본 먼저 쓴 '보이첵'

중앙일보 2014.09.18 01:38 종합 25면 지면보기
뮤지컬 ‘보이첵’ 초연을 앞둔 윤호진 대표는 ‘산고’란 단어를 여러 차례 썼다. ‘창작뮤지컬의 대부’라 불리는 그에게도 창작의 고통은 예외가 없었다. 그는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긴장된다”면서도 “관객들이 머리뿐 아니라 가슴과 창자·중추신경으로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장담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뮤지컬 제작·연출자 윤호진(66)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머릿속에 작품이 줄을 서 있다”는 사람이다. ‘명성황후’와 ‘영웅’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 장을 열었던 그가 이번엔 ‘글로벌’ 색채 강한 작품을 들고 나왔다. 다음달 9일부터 한 달 동안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창작뮤지컬 ‘보이첵’이다.

'명성황후' 만들었던 윤호진
한국어 뮤지컬로는 한계 깨달아
보편적 소재, 작곡은 영국 밴드



 15일 서울 오금동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2003년 ‘명성황후’ 북미 공연을 하면서 한국 역사를 배경으로 만든 한국어 뮤지컬로는 해외시장 공략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보이첵’은 출발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뒀다. 해외 제작진을 뽑아 대본과 가사를 영어로 먼저 썼다. 이번 공연은 한국어로 번역·각색해 펼친다. 뮤지컬 넘버 작곡은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밴드 ‘싱잉 로인즈’가 맡았다. 작품 선정 후 무대에 올리기까지 꼬박 8년이 걸렸다.



 -왜 ‘보이첵’인가.



뮤지컬 ‘보이첵’의 주인공 보이첵(김수용·왼쪽)과 마리(김소향). 너무 사랑해서 죽일 수밖에 없는, 처절한 사랑을 연기한다. [사진 LG아트센터]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소재를 다뤄서다. 독일 천재작가 게오르그 뷔히너가 쓴 미완성 희곡이 원작이다. 처절한 사랑의 아픔을 담고 있다. 연극으로는 숱하게 무대에 올라왔지만, 대형 뮤지컬로 제작된 적은 없었다. 연극 ‘보이첵’을 볼 때마다 대사만으론 강렬한 감정 전달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에 선율을 얹어보자, 욕심이 났다. 한국에서 초연한 뒤 완성도를 더 높여 영국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보이첵’의 초연 무대 주인공으로는 김다현과 김수용이 더블캐스팅됐다. 이들은 가족을 부양할 돈을 벌기 위해 생체시험에 지원한 말단 병사 보이첵을 연기한다. 보이첵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연인 마리 역엔 김소향이, 마리를 유혹하는 군악대장 역엔 김법래가 캐스팅됐다. 모두 뮤지컬 전문배우들이다.



 -아이돌 가수 등 연예인은 안 보인다.



 “굳이 피한 것은 아니다. 연습시간을 내가 요구하는 만큼 할애할 형편이 안돼 캐스팅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두 달 동안 연습에 ‘올인’ 할 수 있는 배우들과만 함께 작업한다. 그래야 앙상블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 대사·노래 외운다고 공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티켓값이 4만∼8만원이다. 대극장 뮤지컬 VIP석 가격이 대부분 13만∼14만원 정도인데….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 맞는 가격으로 정했다. 부유층만 뮤지컬 보는 게 아니지 않나. 공동제작사인 LG아트센터도 뜻을 같이했다. 티켓값이 싼 만큼 제작비를 줄이려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의상도 직접 제작하고, 2002년에 공연했던 뮤지컬 ‘몽유도원도’의 무대장치도 일부 재활용한다.”



 -라이선스 뮤지컬 중심으로 돌아가던 한국 뮤지컬 시장에 최근 창작뮤지컬 바람이 불고 있다. 올 상반기 ‘프랑켄슈타인’의 성공이 자극제가 됐다. 창작뮤지컬 선구자로서 소회가 남다를 듯하다.



 “앞으로는 창작뮤지컬밖에 살 길이 없다. 로열티를 12∼17%나 내야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을 만드는 건 ‘남 좋은 일’이다. 창작뮤지컬도 위험요소가 참 많다. 우리나라 관객층이 너무 얇아서다. 한 시즌에 10만 명 보러오면 대성공인데, 그 정도론 3개월 이상 장기 공연이 어렵다. 제작비를 40억원 이상 쓰면 티켓이 매진돼도 손해를 본다.”



 -갖은 위험요소를 피해갈 묘책이 있나.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해법이 될 것 같다. 한·중·일 3국이 합작 형태로 작품을 만들어 시장을 공동으로 활용하면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안중근 의사는 동북아 3국이 힘을 합하면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다고 했다. ‘보이첵’ 이후엔 중국과 합작 뮤지컬 제작을 추진할 생각이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호진=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이자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 연극 ‘아일랜드’ ‘신의 아그네스’ ‘사의 찬미’,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완득이’ 등 연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총감독,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한국문화공연 총감독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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