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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김영희 묻고 윤병세 답하다

중앙일보 2014.09.18 00:57 종합 30면 지면보기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2일 본지 김영희 대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자는 양국의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며 “가까운 시일 내 양국 사이에 많은 움직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장관이 외교 현안 전반에 대한 인터뷰에 응한 것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평소 “한국 외교가 복잡한 고차방정식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격변하는 동북아 외교 지형에 대한 비유다. 지난 12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이 방정식의 답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다. 언론 인터뷰에 잘 나서지 않는 그가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국내 언론인과 한국 외교장관이 ‘브레인스토밍’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인터뷰는 2시간20분 동안 진행됐다. 외교 현안을 두루 옮겨 다니며 40개의 문답이 오갔다.

가까운 시일 내 한·일 간에 많은 움직임 볼 수 있을 것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12일 외교부 청사 17층 접견실에서 본지 김영희 대기자와 인터뷰했다. 140분 동안의 인터뷰에서 윤 장관은 한?일관계 등 외교 현안을 두루 설명했다. 윤 장관은 “통일을 이뤄 평화배당금을 전 세계와 나눌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김성룡 기자]

-장관께서 너무 강경한 대일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해왔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대기자께서 생각하시는 바도 중요한 시각이지만,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 보면 그런 시각에 동의하기 쉽지 않습니다(웃음).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그 외에 안보나 경제 협력, 국민 교류 등은 역사 갈등과 연계시키지 말고 증대해 나가자는 균형 잡힌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대화의 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질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양국의 관계개선 의지가 강한 만큼 가까운 시일 내에 한·일 간 많은 움직임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한·일 외교장관도 지금까지 세 번 만났고, 앞으로 연내에 추가적으로 만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자 정상회담이 없다고 모든 양국 관계가 안 좋다는 것은 지나친 성격 규정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께서 내년을 한·일관계의 새로운 원년으로 삼자는 화두를 던졌죠. 특히 현재 가동 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협의를 집중적으로 진행해 성과를 보면, 이것이 첫 번째 단추가 돼 (한·일관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접촉의 양이 충분하다는 데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수정주의적 시각과 야망을 우리의 외교적 노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안정·불가역적 한·일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대일 외교의) 목표를 낮췄습니다. 과거 20년 동안 정권 초기에는 한국이 일본에 선의의 조치를 취하지만, 말기에는 늘 악화된 채로 끝났는데 이런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죠. 반보를 나가더라도 방향성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가겠다는 취지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전략과 로드맵이 분명 있으니 일본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하라기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십시오.”

 -독일 통일의 과정을 보더라도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최근 한·중·일 고위급회의에서 3자 외교장관회담을 열기로 합의했고, 이것이 3자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양자 간의 문제 해결은 아닙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한 한·일 정상회담이나 외교장관회담의 로드맵이 있습니까.

 “중요한 지적입니다. 하지만 다자회담의 장점은 양자 간에 껄끄러워서 이야기조차 하기 싫을 때도 대화를 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한·중·일이 만나면 꼭 성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신뢰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뜻입니다. 다자회담 환경에서 만나는 양자는 비교적 부담이 적습니다.”

 -그렇다면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한·일 정상회담도 열릴 수 있을까요.

 “장소나 시기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3국 외교장관회담을 열어야 하는데, 그 간격을 고려하면 지금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닫은 적이 없습니다. 긍정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여건과 시기의 문제인데, 그러려면 일본 측이 위안부 피해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진전이 이뤄지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겠지요.”

 
 


 -장관께서 중국에 경도돼 있고, 이 때문에 미국도 긴장한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중의) 충돌을 염두에 두는 시각은 사실과 다릅니다. 한국이 중국에 경사(傾斜)된다기보다는 한·일관계가 진전이 안 되는 상황에서 한·중관계가 진전되니 그 부분이 부각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굳이 경사라는 표현을 쓴다면, 오히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보다 한국에 경사된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을 보자면 한·중이 회합한다는 인상을 일본에 주고 있습니다. 또 중국과 허니문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 문제 등에 있어 실질적으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북핵 문제에 있어 한·중 공조가 한·미 공조 못지않게 심화해 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중국이 유엔 제재를 실제로 국내 제재로 이행하는 것을 보면 핵 문제에 대한 시각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지금 북핵 문제는 한·미·중 3자가 실질적으로 공조를 강화하는 입장입니다.”

 -시 주석의 외교 참모역을 맡고 있는 칭화대 옌쉐퉁(閻學通) 교수가 저서와 학술대회 등을 통해 ‘양단(兩端) 외교(double alliance)’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동맹이 가능하다는 이론입니다. e메일을 통해 한국이 그런 선례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990~1120년 고려가 북송과 거란에 동시에 조공을 바쳤고, 1618~1644년 조선이 명뿐 아니라 후금과도 관계를 맺었다는 답이 왔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당히 재미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냉전 때처럼 동맹이 우후죽순으로 발생할 시기는 아닙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지금처럼 조화롭게 진화할 가능성이 높고, 미국도 이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양국과의 관계를 각각의 이유로 강화할 순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연내에 타결된다면, 이는 경제적 의미뿐 아니라 전략적 함의가 큽니다. 하지만 한·중관계가 발전한다고 해도 그게 군사적 함의를 가진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 문제로 넘어가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북한이라는 ‘키(key) 파트너’가 빠져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남북관계 정상화까지 1년반이 걸렸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이제 1년반이 됐고, 과거 정부의 장단점을 종합해서 만든 신뢰 프로세스를 국제사회도 합리적이고 균형적이라고 평가합니다.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며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현 가능한 모든 분야는 북측에 진정성을 가지고 말한다는 생각입니다.”

 -현실적으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북핵 문제 해결을 후순위로 돌릴 수도 없습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북한이 병진노선을 견지하는 상황에서 쉽지 않습니다. 북핵 문제를 단순 북핵 문제로만 보지 않고 북한 문제의 일부로 보면서,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거나 변화할 수밖에 없는 국제사회 영향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북한의 핵 포기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유일한 선결조건은 아니란 뜻입니까.

 “현재의 북핵 대응 공조 전선을 강화하면서 북한의 생각을 바꾸는 노력을 하는 투트랙 접근을 한다는 것입니다.”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의 유럽 방문과 이수용 외무상의 유엔행 등 북한의 외교적 움직임이 많습니다. 북·일 납치자 문제 협의가 한창이고 최근엔 미국 군용기가 평양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우리만 고립되는 양상이란 지적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례적으로 강 비서와 이 외무상이 움직이는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겪는 외교적 고립이 얼마나 큰지를 반영하는 절박한 움직임으로 봅니다. 한국을 고립시키려 하는 공세로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일전에도 이 외무상이 방문한 국가들의 외교장관들이 전화를 해줬습니다. 경제협력 요청, 북핵 문제, 인권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제게 말해줬습니다. 북한은 결국은 한국을 통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북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핵, 미사일 문제에 이어 북한 인권문제입니다. 이번 유엔 총회에서도 결의를 채택할 예정입니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이기에 이 외무상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북한이 국제무대로 나오는 것은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현상 아닙니까.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이 도발에 이어 외교 전선으로 나온 것은 안보적 부담이 조금이라도 완화된 측면이 있죠. 이런 상황이 오래가길 바랍니다.”

 -이런 상황이 오래가려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제의한 것도 있고 (대화)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드레스덴 제안이나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께서 제안한 사업들은 남북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실천 가능한 사업인데, 북한이 흡수통일이라고 하며 거부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남북 고위급 접촉 등으로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다고 했으니, 적극적 호응을 바라고 있습니다.”

 -뉴욕 유엔 총회에서 남북 외교장관회담이 열릴 수 있습니까.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대통령 수행 일정이 대부분이고 제 독자 일정은 하루뿐인데, 여러 회담이 잡혀 있어 일정 사이에 따로 만날 수 있을지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린 자세로 만나면 우리 관심 사항을 이야기할 준비는 돼 있습니다.”

 -지금 북·미, 북·일 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십니까.

 “미국은 북한에 구금된 세 명의 미국인에 대해 관심이 크지만 이 문제와 여타 핵심적 외교안보 정책을 연계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일관계는 5·29합의(일본인 납북자합의) 이후로 후속 조치가 당초보다 지연되는 것 같습니다. 한·미는 일본의 독자 제재 완화 과정에서 북핵공조 균열을 야기하지 않도록 투명한 추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일본도 핵, 미사일, 납북자 문제는 패키지로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APEC 때 중·일 정상회담은 열릴 것으로 봅니까.

 “일본이 강하게 희망하는 것 같지만 중국은 기본적으로 확고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한 뒤 이게 충족이 돼야 생각해본다는 상황입니다. 다만 다자 무대이고 중국이 호스트 국가라는 점도 보며 복합적으로 판단해야겠지요. 중·일관계가 개선된다고 해서 우리가 압박을 받거나 수세에 처한다는 시각은 잘못입니다. 거꾸로 한반도 문제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한·일관계가 어려운 중에도 우리가 중·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입장을 전달하고 있으며, 또 투명한 정도로 협조를 받고 있습니다.”

정리=유지혜·정원엽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윤병세 장관은 …

1953년 서울생. 경기고-서울대 법대 졸업. 77년 외시 10회. 주미공사, 차관보 등 역임. 노무현 정부 NSC 정책조정실장,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 퇴직 후 서강대 초빙교수. 2013년 3월 외교부 장관 취임. 부인 정은영씨와 1녀(영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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