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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의 세계 속의 한국] 미터와 마일의 대결

중앙일보 2014.09.18 00:43 종합 32면 지면보기
세계에서 미국만이 유일하게 거리를 마일로 표시하며 아직도 복잡한 파운드·갤런·인치·야드 등을 사용한다. 한 걸음의 길이를 피트, 두 팔 벌린 길이의 반을 야드로 하듯 인체를 기준으로 한 영국식 단위들이다. 정해진 길이를 중심으로 미터·센티미터·킬로미터 등의 대륙식 미터제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통일됐는데 유독 미국만이 여전히 마일을 고집하고 있다.


-미국이 마일을 고집하는 이유

미터제는 계몽주의 이후 프랑스에서 진지하게 토론돼 오다가 대혁명 뒤 정식으로 도입됐다. 당시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였던 토머스 제퍼슨은 이를 미국에 도입하기 위해 미터제 찬반토론을 진지하게 지켜봤다. 그는 제3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미터제 도입을 시도했지만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끝내 포기했다. 반대세력은 미터제가 비(非)미국적·비애국적·반역적·혁명적이라고 공격했다. 미국 스스로가 혁명으로 일으킨 나라임에도 미국인들이 프랑스대혁명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지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미터제 도입 논쟁이 시작된 것은 국가 수립 직후인 1784년이었다. 이 논쟁은 1863년 또다시 불거져 100년 넘게 싸움이 지속됐다. 결국 1966년 미터제는 끝내 도입이 무산됐다. 미터제가 계몽적이며 과학적이고 민주적이라는 찬성론이, 미터제가 무신론적이며 반동적이라는 반대론에 밀려난 것이다. 하지만 1971년부터 사회분위기가 다시 크게 변해 포드 대통령이 75년 미터제 도입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식품에는 킬로그램과 파운드가 병기되고 마일 옆에 킬로미터가 함께 표기되기도 했다. 미시간주의 웨인시티란 작은 도시는 모든 단위를 미터제로 바꾼 ‘메트릭(미터제 사용)시티’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시 동서냉전시대답게 미터제가 공산주의적·비미국적임을 내세워 강렬히 저항했고 ‘가장 미국적인’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 취임하면서 ‘미국인의 길’을 내세워 미터제 도입을 폐기했다.



 하지만 나홀로 마일제를 고집하는 미국이 글로벌 세계에서 겪는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국인들이 미국만 벗어나면 모든 단위에서 헷갈려 혼란에 빠지자 2012년부터 또다시 미터제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백악관을 중심으로 진지한 검토가 시작됐으며 시민들 찬성 서명도 5만을 넘었다고 한다. 세계는 규격전쟁이다. 규격을 선점하는 자가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법이다.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국력을 바탕으로 마일제를 고수하고는 있지만 글로벌 세계에서 언제까지 이를 지켜낼지는 미지수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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