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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김우중을 위한 변명

중앙일보 2014.09.18 00:42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내용보다 레토릭이 근사해서 밑줄을 긋는 경우가 제법 있다.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된다”는 표현이 그렇다. 고 이병주의 소설 ‘산하’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얘기를 꺼낸 건 김우중 전 회장과 대우그룹 때문이다. 40대 이상인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하지 싶다. 대우의 창업과 성장은 신화였고, 김우중씨의 도전과 패기는 경탄의 대상이었다는 걸. 자본금 500만원으로 1967년 설립된 회사가 30년 뒤 자산 77조원의 거대 재벌이 됐다. 이 같은 달빛 전설은 수많은 젊은이를 열광시켰다. 많은 청년의 꿈은 창업이었다. 김우중처럼 무역회사를 다니다가 ‘내 사업’을 하겠다는 거였다. 오퍼상이란 단어가 대유행했고 율산·제세·대봉 등의 ‘앙팡 테러블’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그러나 1999년, 신화는 역사로 변했다. 성공 신화만큼 실패의 역사도 극적이었다. 40여 개의 계열사가 몽땅 해체됐다. 2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뒤치다꺼리에 쓰였다. 그러면서 김우중씨는 공적(公敵)이 됐다.



 장황하게 김우중씨 얘기를 쓰는 건 얼마 전 발간된 『김우중과의 대화』란 책 때문이다. 솔직히 실망했다. 이전까지는 연민의 감정도 상당했다. 나라 경제를 절단 낸 그의 잘못에는 분노했지만, 다른 한편 신화의 붕괴는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인답지 않았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컨대 대우의 패망은 정권 탓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죽일 의도였으며, 대우자동차 등 몇몇 기업은 살려주겠다는 약속도 어겼다고 했다. 그 바람에 GM과 같은 외국기업만 엄청난 이득을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정권의 힘’보다는 ‘시장의 힘’이 더 컸다고 본다. 대우가 다른 재벌그룹처럼 서둘러 구조조정을 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게다. 정권이 아무리 의도했다고 해도 그 힘은 시장에서 먹혀 들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당시 김우중씨는 과거의 관행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정부가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관행, 은행 돈은 내 돈이라는 착각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울려댔던 경고음을 그렇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



 또 하나, 대우자동차가 GM에 싸게 팔린 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수많은 기업과 자산들이 외국에 떨이로 매각되던 시절, 대우자동차마저 그렇게 팔린다면 우리는 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할까라는 아쉬움 말이다. 하지만 이것과 대우 패망은 별개 문제다. 오히려 김우중씨의 도박이 성공해 대우자동차를 계속 맡았더라면 이게 더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우리 경제는 대마불사(大馬不死)에 사로잡혀 반성하고 수술할 기회를 놓쳐버렸을 게다.



 이런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우중씨의 마지막 소원은 들어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젊은이들에게 도전 정신과 패기를 심어주는 교육의 기회 말이다. 왜냐? 비록 그는 실패했지만 누구보다 기업가정신이 강했던 사람이라서다. 그는 인생을 몽땅 기업에 다 걸었다.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고, 휴일과 휴가도 없이 일했으며, 일 년에 3분의 2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게다가 경험과 지식, 네트워크도 상당하다. 망한 지 오래됐지만 대우 브랜드가 아직도 최고인 개발도상국이 꽤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지론 역시 지금도 유효한 세상이다. 이러한 열정과 경험, 네트워크가 젊은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된다면, 그래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을까. 적어도 일자리와 창업 문제는 해결 실마리를 찾지 싶다.



 반기업 정서와 하도급 문제에도 도움될 거다. 그의 ‘50 대 50의 원칙’이 단적인 예다. 기업은 벌어들인 것의 50%를, 자신이 아닌 국민과 중소기업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해외에만 투자하지 말고 국내에도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회사가 어렵다고 사람을 함부로 잘라선 안 된다는 주장 역시 소비부진과 저투자 해결에 보탬이 되지 싶다. 전경련 회장을 지낸 사람의 말이기에 설득력도 있을 게다. 요컨대 우리 사회의 고질병 해결에 김우중씨를 활용하자는 제언이다. 기업가로선 실패했지만 그의 고유 자산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마지막 소원이라는데.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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