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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통일 사료의 체계적인 수집·관리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4.09.18 00:34 종합 33면 지면보기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사학
“과거는 서막(序幕)이다”라는 말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폭풍부’에 나오는 말인데 미국 국립문서관 앞에 세워진 조형물에 이 경구가 새겨져 있다.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서막이라는 뜻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연관성, 과거를 정리하는 것이 갖는 중요성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서독의 동방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은 통일이 하나의 회담이나 합의로 달성될 수 있는 일회적인 행위가 아니라 많은 중간 단계와 절차를 거치는 하나의 과정임을 강조했다.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할 때 그 서막을 여는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한반도 분단현실의 안과 밖, 통일을 위한 한국인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는 통일 사료들을 정부 차원에서 수집하고 관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통일 사료에는 한국 정부에서 생산한 문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분단은 냉전 등 국제적 문제와 결부되어 발생하고 유지되었다. 한반도 통일은 한동안 유엔총회에 매년 상정되는 국제적 쟁점이었다. 외국 정부 및 국제기관, 민간기관이 소장한 관련 자료들에 대한 체계적인 실태 파악과 수집이 필요하다.



또한 월남민과 이산가족의 생활상과 애환, 탈북자 및 북한의 인권실태, 민간 통일운동 등을 보여주는 사료들을 수집하는 작업도 시급하다. 특히 이들 민간 사료는 그냥 방치한다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 사료에는 문자로 기록된 것뿐 아니라 사진 및 동영상, 음성자료들도 있다. 38선 및 휴전선 표식물, 남북관계 등과 관련된 각종 유물들도 있다. 통일은 기본적으로 현재진행형의 과정이다. 앞으로 여러 관련 기록과 유물들이 생산될 터인데 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통일 사료의 수집과 관리는 분단문제 해결의 토대가 되는 콘텐트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이는 물론 관련 학술 연구에 활용될 것이다. 한반도 분단문제에 대한 연구는 한국인들이 주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의 학술적 역량을 시험하는 문제다. 한반도 분단은 탈식민과 냉전 등 세계사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연구는 단지 한국적 특수성을 담는 한국학 차원이 아니다. 세계사적인 문제 해결에 한국의 학문이 기여하는 좀 더 글로벌한 차원에서 한국학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나아가 통일 사료의 구축은 일반 시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도 필요하다. 한반도 분단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의 의지와 역량이다. 이는 통일을 강조하기만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마땅히 그 토대가 되는 콘텐트의 구축과 활용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의 문화역량 자체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예컨대 ‘쉬리’ ‘공동경비구역’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등 한국영화의 대표적 흥행작들은 분단현실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이들 작품의 제작과 관련된 시나리오 원고, 소품 등도 통일 사료로 보존될 가치가 있을 것이다. 통일 사료는 문학작품, 영화 등의 제작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문화활동이 활성화되면 시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이 판문점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한반도 분단현실의 다양한 면모와 역사적 전개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제대로 된 박물관도 없고, 관련 시설도 미비하다. 최근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냉전의 역사를 다루는 전시시설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냉전의 한복판에서 열전(熱戰)을 치렀고, 수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아직도 휴전상태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시설이 별로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물론 박물관 같은 전시시설을 만들려면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논의와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통일 사료의 수집과 정리는 관련 전시시설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 콘텐트를 구축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 정부만이 아니라 민간 차원의 기록까지, 북한 인권실태부터 민간 통일운동까지 망라하는 통일 사료를 수집하는 작업은 분단 극복을 위해 정부와 민간,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화 및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는 면에서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드는 등 분단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의 분단현실은 한반도 내외의 여러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양상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통일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의지도 점차 수그러들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엉켜 있는 한반도 분단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무엇일까. 통일을 위해 정부와 민간, 다양한 정치·사회 집단이 함께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협력의 장을 어디서부터 마련할 수 있을까. 통일 사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작업이 한반도의 미래에 새로운 서막을 여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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