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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군이 뼛속까지 바뀌어야 하는 까닭

중앙일보 2014.09.18 00:34 종합 33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
연애 문제로 자살한 걸로 알았던 딸이 상관의 가혹행위 때문에 자살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면 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억장이 무너질 게다. 이 나라의 군은 이렇게 억장 무너지는 일을 너무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한다.



 2010년 강원도 화천의 한 야산에서 군화 끈으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군 심모(당시 25세) 중위가 상관인 이모 소령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각종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육군이 17일 밝혔다. 4년 전 심 중위가 사망했을 당시 군은 연애 문제에 따른 일반 자살로 결론 내렸었다.



 육군 검찰단의 조사에 따르면 이 소령은 심 중위에게 특별관리라는 명목으로 1~2시간씩 대대장실로 불러 문을 걸어 닫은 채 면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단둘이 등산을 가자고 했고, 위치 보고를 이유로 수시로 전화나 문자를 하도록 했다. 장기복무 평가에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빌미로 “내 바짓가랑이에 매달려라”고도 했다. 지난 6월부터 약 3개월간 31명을 조사해 알아냈다고 한다. 왜 4년 전에는 철저하게 수사하지 못했을까.



 심 중위가 사망한 뒤 유가족은 부대 앞에 플래카드를 걸어 진상 규명을 요구했고, 여의치 않자 올해 5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했다. 6월부터 진행됐다는 군의 재조사는 이처럼 ‘힘 있는’ 외부의 움직임에 떠밀려 진행됐다.



 심 중위 건만이 아니다. 15사단 여군 오모 대위, 제15특수임무 비행단 공군 김모 일병 사건 등도 ‘자살 사건 발생→일반 자살 처리→유가족 의혹 제기→재조사→가혹행위 확인’이라는 5단계 코스가 공식처럼 반복되고 있다. 28사단 윤 일병 사건도 자살은 아니지만 큰 틀에선 마찬가지다. 의혹이 실체로 확인되고, 뒤늦은 사과에 군의 권위는 날로 추락하고 있다. 국민은 냉소와 분노로 군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16일 윤 일병 사건 재판이 열린 3군사령부 군사법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많은 방청객이 몰려들 것으로 판단한 군은 재판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방청권을 받아 입장하게 했다. 간단한 인적사항도 적게 했다. 그러나 일부 방청객은 이를 거부하고 소리쳤다. “원칙? 규칙? 진작 좀 그렇게 지켜보지” “항상 은폐하더니 이제 재판도 은폐하려는 거냐”고 고함을 질렀다. 재판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고, 10분 만에 휴정했다.



 군의 위기는 지금 위험 수위다. 일부에선 징집 반대 서명운동 등 군의 근간을 흔드는 흐름까지 일고 있다. 국민개병제를 실시하는 사회에서 군이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잃는다는 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군이 말 그대로 뼛속까지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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