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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남자가 혼자 영화를 볼 때

중앙일보 2014.09.18 00:29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비긴 어게인’은 요즘 극장가에서 기대 밖의 놀라운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는 영화다. 한 달 전 처음 개봉할 때만 해도 흥행순위 8, 9위 정도에 불과했지만 점차 순위가 오르더니 급기야 관객 200만 명에 이르렀다. 작은 규모로 상영을 시작한 다양성영화임에도 웬만한 상업영화 이상의 관객을 모은 것이다. 뜻밖에도 주변의 중년 남자들로부터 재미있게 봤다는, 그것도 혼자 봤다는 얘기를 여럿 들었다. 함께 극장에 간 자녀들은 다른 영화를 보고 혼자 이 영화를 골라 봤다는 경우도 있어 내심 놀랐다. 뉴욕이 무대인 음악영화라기에 언뜻 젊은 관객, 여자 관객 취향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통념으로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나이 든 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영화를 더 많이 본다. 실제 영화진흥위원회의 2012년도 영화소비자조사 결과도 그렇다. 연간 극장에서 보는 영화 편수는 여자가 평균 12.9편으로 남자의 평균 10.5편보다 좀 많다. 연령별로는 남녀 모두 19~29세가 가장 영화를 많이 본다. 이후 30대, 40대, 50대로 갈수록 관람편수가 줄어든다. 한데 인구 변화의 흐름을 살피면 좀 다른 생각이 든다.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건 20대였는데, 지금은 40대다. 인구추계에 따르면 3, 4년 뒤에는 그 자리를 50대가 차지할 전망이다. 낮아진 출생률과 길어진 수명에 따른 이런 변화는 점차 흥행 영화의 소재나 주연 배우의 연령대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실 이는 2000년대 중반 미국 TV드라마에서 이미 벌어진 일이다. 영화계에선 전성기를 지난 것으로 평가받던 50대 배우들이 대거 TV드라마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들과 같은 또래인 베이비부머 시청자들의 높은 구매력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반면 지금 50대인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정년퇴직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급한 형편이니 구매력 자랑은 딴 얘기다. 그나마 영화는 관람료가 상대적으로 싼 편이라 가벼운 주머니로도 즐기기 쉬운 분야다.



 뒤늦게 ‘비긴 어게인’을 보고서야 이 영화를 알아본 주변 중년 남자들의 안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인공은 남자친구에게 상처받은 젊은 작곡가 겸 가수, 그리고 우연히 그의 노래를 듣고 재능을 알아본 왕년의 유명 프로듀서다. 프로듀서는 자신이 세웠던 음반회사에서 이제 막 쫓겨났고, 아내와 딸에게도 냉대받는 처지다. 이들은 녹음실을 빌릴 돈이 없자 뉴욕 곳곳을 야외무대로 삼아 신나게 연주하고 녹음한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지는 대신 각자 일종의 치유를 경험하고, 큰돈이나 명성 대신 음악 자체를 열정적으로 좇는다. 배우자의 취향, 자녀들의 취향 대신에 스스로의 취향을 좇은 중년 남자들에게 정말 혼자 봤냐고 생각 없이 거듭 물었던 게 꽤 미안해진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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