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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진 가구가 소비 더 줄였다

중앙일보 2014.09.18 00:10 경제 3면 지면보기
결혼 8년 만에 송모(38·남)씨는 서울에 ‘내집’을 마련했다. 대출금리가 낮아졌다는데 용기를 내 이달 용산구에 있는 아파트를 사기로 계약을 맺었다.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했던 이사 걱정, 오르는 전세 가격 걱정을 더 이상 할 필요 없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집이 생겼다는 기쁨이 컸다. 하지만 그런 뿌듯함은 잠깐이었다. 연 3.6% 금리로 2억 원 넘게 받은 대출 때문이다. 송씨의 설명이다. “이자에 이것저것 부대 비용을 더하면 한 달 100만원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오더군요. 집사람과 얘기해 일단 생활비를 지금의 절반 밑으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원금까지 갚으려면 대비를 해야하니까요. 커피 같은 간식은 물론 외식, 쇼핑 다 끊었어요. 정말 필요한 생필품만 근처 싼 수퍼나 시장을 찾아 사기로 했죠. 명절에 나간 돈이 만만치 않아서 이달엔 평소 5분의 1 정도로 지출을 졸라맸습니다.”


72%가 빚 있어 … 집값 떨어져 타격
금융위기 뒤 소비성향 3.6%p 하락
전세·월세 거주자는 큰 변화 없어

 ‘금리가 낮아지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도 살아난다’고 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한국에선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공식이다. 금융위기로 많은 돈이 풀렸고 금리가 유례 없는 수준으로 하락했지만 소비지출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한참 밑도는 0~2%대에 머물렀다. 왜 이럴까. 한국은행이 17일 이런 소비단절의 주체가 누구고 무엇이 이들의 지갑을 닫게 했는지 추적한 보고서를 내놨다. 한은 조사국 황상필 팀장과 정원석 조사역이 쓴 ‘부동산시장 변화와 소비간의 관계 분석’ 이다. 두 사람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간 소득과 지출, 주택가격, 주가지수, 금리, 실업률을 모두 감안해 하우스푸어의 소비 행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빚을 안고 있는 집주인이 떨어진 주택가격 때문에 소비를 줄였다’는 것이다. 분석 결과 주택가격 상승률이 1%포인트 낮아지면 자기 집이 있는 가계의 소비 증가율이 0.17%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집이 없는 가계는 같은 상황에서 소비 증가율이 0.1%포인트 감소하는데 그쳤다. 황 팀장은 “집이 없는 가계보다 집이 있는 가계가 집값에 따라 소비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는 집주인 상당수가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많은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1~2013년을 기준으로 자기집에서 사는 사람은 전체 가구의 60%다. 이 가운데 72%가 부채를 안고 있는데, 전세·월세 거주자보다 그 비율이 높다.



 이들의 소비심리는 주택가격이 급락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얼어붙었다. 주택을 소유한 가구가 번 돈(가처분소득) 중 얼마를 지출하느냐를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은 금융위기 전인 2003~2007년 77.5%에서 2011~2013년 73.9%로 3.6%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소득이 낮은(하위 40%) 50대 이상 고령층 주택소유자의 평균소비성향은 105.6%에서 95%로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에서 주로 나타났던 ‘채무 디플레이션’ 현상이 가계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우려한다. 연세대 성태윤(경제학) 교수는 “실물자산 가격 하락이 우려되거나 진행되는 상태에서 주택을 부채로 구매한 가계는 소비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며 “가계들이 채무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로 갈 수 있어 위험신호”라고 말했다.



 이는 가계의 빚부담을 줄이고 더 이상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연결된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양적완화정책을 실시한 것도 주택 관련 채무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성 교수는 “가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금리는 내릴 필요가 있지만 새로운 가계빚을 막기 위해 LTV·DTI 같은 규제를 완화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노년층의 소비심리 위축을 위해선 불안감을 덜어줄 복지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들은 생각보다 오래 사는 ‘장수 리스크’를 걱정해 집값 등락과 관계없이 돈을 못 쓰고 모아둔다. 한국금융연구원 임진 박사는 “고령층의 소비 감소는 수명연장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라며 “의료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치매 보험·간병인 보험 등을 확충하고, 젊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출산진흥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숙·심새롬 기자



◆평균소비성향=한 가구가 소득 중 얼마나 소비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전체 소득에서 세금·이자지출 등을 빼면 가처분소득이 남는다. 가처분소득 중 식비·교통비·여가비 등 실제 소비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백분율(%)로 계산한 값이 평균소비성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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