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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신문 보기-1986년 9월 26일 1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라면소녀'의 신화

중앙일보 2014.09.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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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 금메달 3관왕 임춘애 선수 (사진 : 중앙포토 DB)




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 금메달 3관왕 임춘애 선수 (사진 : 중앙포토 DB)




1986년 아시안게임 탁구 금메달 유남규 선수 (사진 : 중앙포토 DB)




1986년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단체전 금메달 시상식 (사진 : 중앙포토 DB)












 

45억 아시아인의 스포츠 대축제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9월 19일~10월4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회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에서 개최되는 대회다. 규모도 역대 최대다. 45개국 1만4500여명의 선수단이 한국을 찾는다. 한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한다. 36개 전 종목에 총 1068명의 선수단을 파견해 5회 연속 종합 2위에 도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1986년, 한국은 아시안게임 참가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금메달 93개를 따내며 중국에 단 1개 차로 아깝게 종합 2위에 올랐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금메달은 육상선수 임춘애와 남녀 탁구 단체전일 것이다.



17살 소녀였던 임춘애는 여자 800m에서 1위로 들어온 선수의 실격으로 '행운의 금메달'을 따낸 뒤 1500m, 3000m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혜성같이 스타로 떠올랐다. '평소에 즐겨먹는 음식이 라면'이라는 말이 '라면만 먹고 자랐다'로 와전돼 한때 '라면소녀'로 불린 임춘애는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꿈을 키웠던 사실이 알려지며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전국민을 감동시킨 또 하나의 금메달은 바로 남녀 탁구 단체전이었다. 당시 탁구 최강국이었던 중국은 한국이 넘기 힘든 벽이었다. 결승전에서 만나도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은 남녀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내며 전국을 열광시켰다. 특히 남자 탁구팀의 단체전 결승은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9전 5선승제로 치러진 경기에서 4-1로 앞서며 우승을 눈앞에 뒀던 한국은 잇달아 세 선수가 패하면서 4-4 상황, 운명의 마지막 경기를 치뤘다. 그렇게 5시간 사투 끝에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신문에는 "축! 한국 남녀탁구 '세계제패'", "세계제일! 이 감격 88까지…" 등 최정상에 우뚝 선 탁구를 후원했던 후원사들의 축하광고가 등장했다. 많은 업체들이 1986년 아시안게임에 공식 후원사로서 자사 제품을 홍보하며 마케팅 효과까지 누렸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까?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국민들의 응원과 박수가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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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기자

[사진 중앙포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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