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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실외 금연부터 … 실내 간접흡연 피해 막는 데 소홀

중앙일보 2014.09.17 02:46 종합 4면 지면보기
2004년 8월 26일 헌법재판소는 혐연권(嫌煙權·담배 연기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과 흡연권을 모두 기본권으로 인정했다. 두 권리 모두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권(10조)과 사생활 자유(17조)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다만 혐연권은 생명권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흡연권보다 앞서는 기본권으로 판단했다. 이 결정은 국가가 흡연을 규제하는 강력한 근거가 됐다. 같은 해 아일랜드 의회는 병원·학교뿐 아니라 술집에서의 흡연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실내 금연구역 확대는 1~2년 사이에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다.


선진국들은 실외 흡연에는 관용적
한국, 실내·외 정책 방향 없이 혼재
광화문광장 묶으니 건너편서 담배 펴
흡연자들 숨 쉴 공간도 마련해야

 ‘지붕이 있는 곳에선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원칙이 유럽에서 상식이 됐지만 한국의 금연구역 정책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2010년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실외 금연구역을 지정할 수 있게 되면서 정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클린 서울’ ‘금연 서울(Smoke-Free Seoul)’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광장·공원 등 상징적 장소를 금연구역화했다. 2011년 3월 광화문광장~청계천~서울광장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금연구역이 형성됐다. 한성대 이창원(행정학) 교수는 “실외 장소는 식당과 달리 재산권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반발이 적었고, 지자체가 보다 손쉽게 대상을 확대할 수 있었다”며 “국민 건강이란 명분도 분명했기 때문에 지자체 간 경쟁이 촉발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중앙차로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신도림에는 누군가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면 경고 메시지를 방송할 수 있도록 ‘금연 벨’까지 설치됐다.



 2012년엔 더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서초구와 강남구가 잇따라 서울 최대 상권인 강남대로에서의 흡연을 금지하고 나섰다. 뒤이어 대로변 1000㎡ 이상 건물들도 금연 영토에 편입됐다. 서초구 권영현 보건소장은 “실외 간접흡연 경험률이 아직 81%(2013년 기준)에 이르기 때문에 금연구역을 더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1년 673곳이 던 실외 금연구역은 올해 9439곳으로 14배 늘었다.



 16일 강남대로에서 만난 안성환(28)씨는 “매일같이 다니는 이곳에서 늘 담배를 피웠지만 지금은 참다가 금연구역이 끝나는 양재에서 담뱃갑을 꺼낸다”라고 말했다. 그는 “흡연에 보다 큰 영향을 준 건 PC방·식당 금연”이라며 “실제로 최근 흡연량이 4~5개비(하루) 정도 줄었다”고 했다. 인근 직장에 다니는 비흡연자 김해리(26·여)씨는 “실외든, 실내든 금연 공간이 확실한 건 좋은 일”이라면서도 “대형 건물 옆 녹지가 흡연 공간으로 바뀌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미국이 실내 금연을 강화하고 실외 흡연에 대해선 관용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서울은 실외 금연구역이 더 빨리 확장됐고 실내가 그 뒤를 따랐다. 지난해부터 점진적으로 시행된 음식점 내 금연정책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김창보 보건정책관은 “한국은 실내와 실외 금연이 특정한 방향 없이 혼재돼 있다”며 “실외 금연구역 확대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고, 실내는 단계적으로 더 많은 곳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남대로나 광화문광장을 금연으로 묶어놓으니 풍선효과로 인해 광장 건너편 횡단보도 앞이 ‘암묵적 흡연 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고 했다.



 헌재가 기본권으로 인정한 흡연권을 어떻게 혐연권과 조화시키느냐도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민형 한국담배소비자협회장은 “흡연자를 무조건 밀어내면 새로운 흡연구역이 생길 뿐만 아니라 금연정책에 대한 저항도 커진다”고 말했다.



 금연영토 문제는 ‘프라이버시(사생활) 논란’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금연 아파트를 지정해 예산을 지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파트가 금연 공간으로 일반화되면 이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뿐만 아니라 재산권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강인식 팀장, 강기헌·구혜진 기자, 공현정(이화여대 정치외교)·고한솔(서강대 영어영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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