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교 1등의 책상] 안 될 땐 쉬어가는 것, 그게 바로 1등 전략

중앙일보 2014.09.17 00:12 Week& 2면 지면보기
“문제가 잘 안 풀리면 딱 5분만 고민하고 그냥 덮어요. 기분이 안 좋을 땐 책상에서 일어나서 군것질 하거나 만화책을 보고요.”


안양외고 중국어과 2학년 오수인군

안양외고 전교 1등 오수인군은 “공부 스트레스로 지치지 않게 수시로 쉬며 나를 북돋워주는 게 공부 잘 하는 비결”이라고 얘기했다.



‘안 되면 될 때까지’를 외치며 근성을 강조하는 게 어른들의 가르침인데, 수인이의 공부법은 정반대다. “마음이 답답하고힘들 땐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어 봤자 머리 속에 한 글자도 안 들어온다”며 “이럴 땐 ‘공부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하며 고집부리고 씨름하기보단 차라리 잠깐 낮잠 자는 게 낫다”고 했다. 우수 학생만 모인 특목고에서 전교 1등을 하니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아니냐고 하자, 수인이는 “지난 학기에 슬럼프를 겪으면서 4등급까지 떨어졌다”며 “마음을 편안하게 먹은 뒤 성적이 올랐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즐겼다는 오수인군 방은 책으로 가득하다. 지금도 공부가 잘 안될 때면 책을 수시로 들춰본다. 또 경제·경영에 관심이 많아 방학에는 혼자 공부하기도 한다.


수인이 책상 위엔 교과서나 문제집 대신 포스트잇이 빼곡이 붙어있는 소설책과 역사책이 수북이 쌓여있다. 『신』 『개미』 등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은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공부가 잘 안되면 이렇게 표시해놓은 문장을 읽으며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란다. 이렇게 책상 주위에 두고 수시로 펼쳐보는 책은 만화책을 포함해 15권 정도다.



 그가 자주 들춰보는 건 이런 글귀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 내는 거야. 살아 낸다는 말 속에는 환경에 끌려가지 않고 내 의지로 참고 결연하게 뚫고 나간다는 뜻이 담겨 있어’(『데미안』)나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것 말이다. 수인이는 “가끔 괜히 짜증이 치밀고 화가 날 때가 있다”며 “이럴 때 소설 속 좋은 문장을 찾아 읽으면 위안이 되고 화가 사라진다”고 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질풍노도의 감정을 독서를 통해 조절한다는 얘기다.



 공부가 안될 때 한발 물러나 쉬어가는 태도 역시 독서를 통해 얻었다. 수인이는 베르베르의 『신』에 나오는 ‘부디 자신을 돌보길 바란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성적이 떨어졌다고 괜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일에서 벗어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적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진 않다”며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 위로하고 북돋워주기로 마음 먹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태도는 자칫 ‘공부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식의 방관적 태도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수인이의 학습 태도는 똑부러지고 치열하다. 예컨대 수학 공부를 할 때 단순한 방정식 문제 하나를 풀더라도 함수를 활용하거나 도형을 이용해 푸는 식으로 서너 가지 풀이법에 다 익숙해져야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수학 문제집을 고를 때 답안지 수준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수인이는 “나 혼자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여러 가지 풀이법을 동시에 익히는 건 불가능하다”며 “답안지에 다양한 풀이법을 제시하고 풀이 과정에 필요한 개념과 정의를 정확히 표시한 문제집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오수인군
 답안지를 확인하는 건 기본문제를 완벽하게 숙지할 때까지만이다. 예제나 기본문제를 푸는 수준에서는 단원별로 어떤 개념과 정의를 활용해 문제를 풀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채점을 한 뒤에 답안지를 살펴야 한단다. 답을 맞춘 문제라 하더라도 자신이 정확한 개념을 알고 제대로 적용해 풀이한 것과 대충 풀어 답만 일치한 문제는 구분한다. 겨우 답만 맞춘 문제는 답안지를 분석해 정확히 이해한 후 넘어간다.



 한 문제에 대해 풀이법을 서너 가지씩 익히는 건 이유가 있다. 수인이는 “수능에서 3점짜리 고난도 문제는 해결하는 방법이 다양한데, 한 가지 방법으로 풀다 막히면 얼른 다른 방법으로 넘어가야 답을 맞출 확률이 높아지고 문제 푸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화문제 정도를 풀 수 있는 수준이면 답안지는 보지 않는다. 이때 막히면 교과서나 『수학의 정석』 『수학의 바이블』 등을 보면서 개념 익히기를 반복한다.



 수인이가 가장 자신없어 했던 과목은 국어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글 읽는 속도나 문장 구조 파악은 빠른 편이었다. 그런데도 국어 점수가 잘 안 나왔던 건 제시문을 정확히 읽고 보기에 제시된 별도 지문이나 그림 예시와 연결 짓는 고난도 문제에서 자꾸 틀려서다. 1학기에 국어가 4등급까지 떨어졌다. 수인이는 자신의 단점을 분석한 다음 제시문을 읽는 동시에 곧바로 개요표를 짜는 연습을 했다. 제시문을 읽을 때 주제문 위치와 핵심 단락, 부연 단락 등을 표시하는 거다. 문제 풀이 방법을 바꾸고 이에 익숙해진 후 국어는 다 맞거나 한 개 정도만 틀린다.



수업 핵심 내용만 요약한 수첩. 시험 기간엔 이 수첩만 반복해 읽는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필기를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다. 수인이는 “선생님 설명 전체를 필기한다”고 말했다. 방과 후 자습 시간에는 필기한 원본에서 핵심 내용과 아는 것, 모르는 것 등을 간추린다. 과목별로 3~4단계 추려내면 손바닥만한 수첩 두세 장으로 요약된다. 이걸 시험 때 반복해서 본다.



 수학 공부도 마찬가지다. 반복해서 실수하는 문제의 유형, 자신의 실수 패턴을 정리해 시험장 가기 전 한번 훑어본다. 예를 들어 함수를 풀 때f(χ)=aχ²+bχ+c라는라는 식이 주어졌을 때, 문제에서 ‘이차함수다’라는 조건이 없다면 a=0인 경우와 a≠0인 경우로 나눠서 답을 구해야 한다. 수인이는 문제집을 풀 때마다 a=0인 경우를 빠뜨리는 실수를 범했다. 그래서 노트에다 ‘이차함수라는 조건이 없을 땐, a값이 0인 것도 구해야 한다’고 적어두고 시험 보기 전 그 메모를 보면서 머리 속을 차분히 정리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공부하는데 정말 휴식과 여유가 있을까. 수인이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과 진짜 공부를 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며 “공부가 안될 땐 책상 앞에서 의미없이 시간만 보내지 말고, 차라리 빨리 휴식을 취해 재충전한 뒤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수인이의 책상.
 말은 쉽지만 꼭 해야 할 공부가 쌓여있는데 잘 안된다고 미련없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수인이는 “사실 공부가 안되는 날 책상 앞을 떠나기가 더 어렵다”고 털어놨다. 머리 속에 한 글자도 안 들어올 때 책까지 덮어버리면 ‘난 오늘 놀았다’는 걸 인정하는 거고, 지금 못한 공부를 나중에 더 보충해야 한다는 부담만 는다. 하지만 책상 앞에 버티고 앉아있으면 ‘어쨌든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에 오히려 더 자리를 떠날 수 없다는 거다. 수인이는 “공부가 안될 때 쉬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공부가 잘될 때 더 열심히 하는 정직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쉬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수인이는 “휴식이란 스트레스와 걱정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라며 운동을 권했다. 야구를 좋아해 친구들과 밖에 나가 캐치볼을 하기도 하고, 혼자 있을 땐 야구 과녁을 조준해 공 던지는 연습을 자주 한다. “한가운데를 맞추려고 집중하다보면 걱정을 다 잊게 되고, 제대로 명중시키면 온몸이 짜릿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부모나 교사와 상담하는 것도 추천했다. 수인이는 “비슷한 고민에 빠진 친구끼리 우울한 얘기를 나누다보면 해결책 없이 머릿속만 더 복잡해진다”며 “내가 지금 하는 고민을 먼저 해본 선배이기도 한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얘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평일

6시30분 기상

6시30분~7시15분 아침식사, 등교 준비

7시15분~8시 스쿨버스로 등교

8~16시 수업

16~17시 방과 후 수업

17~18시 저녁 식사(학교 급식)

18~22시 야간 자율학습

22시~22시40분 스쿨버스로 하교

22시40분~24시 아령들기·윗몸일으키기 등 운동, 샤

워 후 신문·웹툰 보며 휴식

24시~24시30분 마무리 공부(빈 종이에 그날 공부

내용 생각 나는 대로 정리)

24시30분 취침(MP3로 영어·중국어 듣기 평가 재생

시켜놓고 수면)

 

주말

8시 기상

8~9시 아침식사, 씻기

9~12시 독서실

12~13시 집에서 점심 식사

13~16시 수학 학원

16~18시 독서실

19~22시 학원(토요일: 영어학원, 일요일: 국어학원)

22~23시 집 옆 공원 네 바퀴 뛰고 집에서 윗몸 일으

키기 등 운동 후 씻기

23~24시 신문·웹툰 보며 휴식

24시~24시30분 마무리 공부(빈 종이에 그날 공부

내용 생각 나는 대로 정리)

24시30분 취침



책상 위 교재

국어: 학교 자체 교재, EBS 인터넷 수능(EBS교육방송편집부),

EBS N제(EBS교육방송편집부)

영어: 학교 자체 교재, EBS N제(EBS교육방송편집부)

수학: 학교 자체 교재, 수학의 바이블(이투스), 마플(희망출판사)

한국사: EBS 탐스런 한국사(EBS교육방송편집부), 한국사능력

검정시험(에듀윌)





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