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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안 된다면서, 또 된다는 교육부

중앙일보 2014.09.17 00:12 Week& 1면 지면보기
학원의 선행학습 광고도 규제 대상이자만 9월 15일 현재까지도 많은 학원은 선행학습 광고를 하고있다
“다음 학기 또는 다른 학년에 편성된 내용을 속진하기 위해서 미리 당겨 가르치는 것은 선행교육 금지 조항을 위반하는 것으로 결정될 것임.”


헷갈리는 선행학습규제법

이 문구는 12일부터 시행한 선행학습규제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교육부가 영재학교를 제외한 전국 초·중·고에 배포한 ‘질의응답 자료’ 에 나오는 내용이다. 학교에서 수업 중 교육 과정에 앞선 내용을 가르쳐도 된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안 된다는 걸까.



수학 수업이 한창인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교실. 칠판에 적힌 수학 문제를 풀던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 문제 푸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뭔지 아냐”고 묻자 몇몇 손을 들고 “미분”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교사는 “미분 진도가 아직 안 나갔으니 그걸로 푸는 건 반칙”이라며 다른 풀이 방법을 알려줬다. 이 교사는 “원래 진도가 예정된 10월 이후에는 미분으로 풀어도 된다”고 했다.



교실에서 이런 웃지 못할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선행학습규제법 때문에 교사가 알려주고 싶은 걸 가르칠 수 없게 된 거다. 강남 일반고의 한 수학교사는 “앞선 교육과정을 내신 시험에 출제하지 않는 건 당연하지만 정규수업과 방과후수업까지 제재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공교육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또 “특히 수학은 당장 배우지 않는 내용도 한번쯤 짚고 넘어가는 게 효율적일 때가 많다”며 “학원에서 미리 배우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만 족쇄를 채워놓는다고 사교육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12일 선행학습규제법 실시 이후 학교가 일대 혼선에 빠졌다. 법의 원래 취지대로 교사들은 학교가 편성한 해당 학년 교육과정에 앞선 내용을 수업 중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법을 어기는 것으로 여겨 꼭 필요한 설명도 주저한다. 그러나 정작 교육부는 “시험에 출제하는 걸 규제한다는 얘기”라며 “수업 중 교사가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제재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교육부 가이드라인에 ‘당겨 가르치지 말라’고 한 이상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피해는 학생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사교육에 덜 의존하는 학생일수록 더 손해를 본다. 자사고에 다니는 김모(18)군이 그렇다. 기숙사 학교에 다니는 그는 평소 교사가 수업 중 언급하는 심화·선행 내용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식으로 공부해왔다. 예컨대 ‘기하와 벡터’ 수업에 교사가 “외적이라는 개념도 있다”고 알려주면 혼자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 김군은 “선행학습규제법으로 수업 중 앞선 내용을 언급하는 자체가 금지되는 셈”이라며 “수학은 결국 학원 많이 다니는 애가 좋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선행으로 앞선 내용을 배우면 풀이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오해”라고 반박한다. 전홍인 교육부 공교육진흥과 사무관은 “학교 교육과정상 해당 학년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을 시험에 출제하는 것만 규제한다”고 말했다.



교사가 혼란스러워하는 것과 별개로 학부모들은 “선행학습규제법이 선행학습을 부추기고 있다”며 강경하게 반대 입장을 나타낸다. 교육운동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지난 7월 강남·송파 등 교육특구 학원 13곳의 선행학습 정도를 평가했더니 평균 4.2년을 앞서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2·2013년 조사 당시 평균 3.8년보다 0.4년 더 늘어난 수치다.



일부에선 교육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까지 얘기한다. 사실 비정상적인 학교 교육과정이 선행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고교가 수능 대비를 위해 3년 교육과정을 2년이나 2년 반 만에 마치기 때문이다. 고2 자녀를 둔 김모(51·강서구 목동)씨는 “수능이 11월에 치러져 3년 배울 내용을 2년에 마치니 중학교 때 선행 안 하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며 “이런 교육과정은 그대로 두고 선행교육만 문제 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교육 과정 편성의 자율권을 확대해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전 사무관은 “고2·3의 경우 현재 한 학기에 수학Ⅱ와 적분과 통계 등 두 가지를 동시에 배우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 바로 사교육이다. 고2 자녀를 둔 김모(47·강남구 대치동)씨는 “선행학습 주범 중 하나는 ‘너만 뒤처지고 있다’는 학원의 공포마케팅”이라며 “대치동에서 수학 학원 보낼 때 듣는 첫 번째 질문이 ‘선행 진도 어디까지 나갔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치동 수학학원 대부분 제 학년보다 적게는 1년, 많게는 4~5년 앞서 진도를 앞서 나가고 있다. 이는 선행학습규제법 실시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2일 오후 대치동 수학학원 10곳에 상담 전화를 했더니 10곳 모두 선행진도를 물었다. “선행을 안 했다”고 하자 “다닐 반이 없다”고 말한 학원이 두 곳이었고, 나머지는 “일단 테스트를 보자”고 답했다.



선행학습법 시행 이후인 15일 현재 강남 대치동의 학원 선전문구도 조사했다. 9월 초 개강한 수업 대부분 초등생을 대상으로 중·고 과정을 가르치는 ‘9가(중3 과정) 심화반’이나 ‘개정 수1(고1) 실력’등 선행과 관련한 내용이 많았고, ‘초등 3학년 정규과정부터 고1 선행’ ‘초등 대상 중등과정 속진반’ ‘체계적인 학습 관리로 선행과 내신을 모두 책임집니다’라는 광고문구도 눈에 띄었다. 고2·중3 자녀를 둔 고모(48·강남구 대치동)씨는 “이런 광고를 보면 불안해지는 게 사실”이라며 “학원 공포마케팅은 그대로 둔 채 학교의 선행교육만 규제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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