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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중국이 한국을 추격한다? 중관춘을 가보라

중앙일보 2014.09.17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중관춘의 대표적 창업 인큐베이터 ‘촹신궁창(創新工長)’은 업무공간뿐 아니라 법무·재무·홍보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성공 가능성이 큰 벤처에는 투자도 한다.


입주기업 2만여 개. 연간 총 매출 4200억 달러(430조5000억원), 해외에서 유턴한 창업자만 2만여 명,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 3000개, 벤처 투자규모 6조3000여억원….

"경쟁자는 애플·구글" … 실리콘밸리 넘보는 중국 IT메카
레노보·바이두·샤오미 탄생한 곳
중국 벤처투자금 3분의 1 몰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베이징 정보기술(IT) 클러스터‘중관춘(中關村)’현주소다. 맨손 창업 10여 년 만에 중국 최대의 부호로 떠오른 바이두의 리옌홍(李彦宏·45) 회장과 같은 성공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중국 전체 벤처투자금의 3분의 1이 몰려들면서‘창업→투자→상장 및 대기업으로 도약→재투자’로 이어지는 창업 생태계의 핏줄이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중국은 이제 세계 최고 인재와 기업,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중관춘을 앞세워 미국 실리콘밸리의 패권까지 넘보고 있다. 최근에서야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판교테크노밸리 등 창업 인프라 구축을 부랴부랴 서두르는 한국은 아예 관심 대상에 빠져 있을 정도로 중관춘의 야망은 무섭다.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 북서부 하이뎬(海淀)구에 자리한 중국의 대표적 IT클러스터‘중관춘’을 찾았다. 1980년대 초 전자상가 거리에서 시작한 중관춘은 이후 관련 IT기업이 모여들면서 해가 갈수록 영역이 확장됐다. 이제는 서울로 따지면 강남구와 송파구 면적을 합친 정도인 75㎢(약 2269만 평) 지역에 거대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북쪽 소프트웨어(SW)파크와 세계 1위 PC기업 레노보, ‘중국판 구글’바이두가 있는 샨디(上地)거리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내려오니 ‘중국판 애플’샤오미, 칭화대(靑華大), 칭화사이언스파크(靑華科技園), 베이징대, 창업거리(innoway), 레전드캐피털, 중국 최대 창업인큐베이터 촹신궁창(創新工場·innovaiton works) 등이 줄지어 입주해있다. 이른바 ‘좁쌀쇼크’로 삼성전자까지 움츠러들게 만든 샤오미는 물론, 레노보· 바이두도 모두 중관춘의 한 구석에서 창업해 성공한 기업들이다.



 중관춘엔 글로벌 IT기업을 비롯한 외국기업들도 2000개가 넘는다. 중국 정부의 서비스 차단으로 철수한 구글도 연구개발(R&D) 센터는 그대로 두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HP, 세계 1위 정보보안 기업 시만텍 등 포춘 500대 기업 중 200여 개가 중관춘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중국지역본부 홍장표 부본부장은 “인구 12억 시장의 대표적 IT클러스터인 중관춘에 돈과 사람이 몰려드니 글로벌 기업들도 진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위 작은 사진은 창업 카페들이 모여있는 거리. 아래는 ‘중국판 애플’ 샤오미의 본사.
 중관춘엔 창업 열기와 인재 공급, 창업투자, 성공 스토리가 모두 어우러져 선순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중관춘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 등지에서 돌아온 귀국 창업자만 2만 명에 이른다. 게다가 중관춘 지역 안에는 베이징대, 칭화대를 필두로 한 41개의 대학들이 풍부한 인력을 쏟아내고 있다. 중관춘 중심부에 위치한 칭화사이언스파크 지하에 입주한 ‘칭화X랩’은 칭화대 학부생은 물론 칭화대 출신이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창업인큐베이터’다. 칭화대 교수나 투자전문가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1대1 창업 교육·상담까지 해준다.



 X랩에서 만난 스타트업 피패드의 마타오(馬濤·40) 대표는 창업 재수생이다. 2006년 칭화대 경영전문대학원(MBA)를 졸업하고 회사를 차렸다가 실패한 뒤 재기를 위해 모교의 X랩을 찾았다. 그는“창업하면 실패도 하기 마련”이라며“엔젤이나 벤처캐피털 중에는 실패 경험이 있는 스타트업을 더 높이 사는 곳이 더 많다”고 말했다. 바이두의 리옌홍 회장과 샤오미의 레이쥔(雷軍·45) 회장은 그의 롤모델이다.



 중관춘 본사에서 접한 바이두는 더 이상 구글 첫 화면을 그대로 베낀 ‘짝퉁 구글’이 아니었다. 2000년 중관춘의 허름한 호텔방에서 인터넷 검색기술 제공업체로 시작했지만, 10여 년만인 지난해 매출 5조4086억원, 영업이익 1조8952원의 거대 IT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중국 내 포털 시장점유율은 70%로 절대적이다. 이제는 지도·동영상·클라우드, 통·번역, 인공지능 기반 음성인식 등 구글의 웬만한 웹(web) 서비스는 대부분 가지고 있다. 모바일 앱서비스도 중국 내 절대강자다. 바이두 앱스토어는 중국 스마트폰 이용자의 필수 앱마켓이다. 내비게이션을 비롯 1억명 이상 이용자를 가진 앱만 14개에 달한다. 최근에는 구글글래스와 유사한 스마트 글래스와, 무인자동차까지 개발하고 있다. 구글 짝퉁을 넘어서 구글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격이다



 칭화대와 베이징대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오니 아스팔트 바닥에‘이노웨이(innoway)’라고 적은 이름의 거리가 나타났다. ‘창업카페 거리’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거리엔 2011년 4월 ‘처쿠(車庫)’라는 이름의 창업자를 위한 카페가 들어선 이후 거리 곳곳에 유사한 카페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창업자들이 카페를 업무공간으로 사용하면서 투자자도 만나고 정보도 교환하는 구조다.



 창업카페 거리 골목 가운데 건물 2층에 자리한 처쿠카페에 들어갔다. 800㎡(약 240평) 규모의 꽤나 넓은 공간엔 테이블마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을 켜고 일에 몰두하고 있는 청년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테이블마다 천정에서 늘어뜨려진 전원케이블이 이색적이었다. 문 앞엔 ‘1기가급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은 투자자들과 함께 ‘아이디어 경진대회’도 열고, 제품화된 것을 시연하는 로드숍행사도 월 1회 열린다. 쑨위(孫宇)라는 이름의 총괄매니저는 “여기 손님들은 모두 창업에 나선 사람들”이라며 “지난 3년간 투자자를 만나 카페를 나간 팀이 130개사, 연매출 1억 위안 이상 올린 곳도 4개사에 달한다”고 자랑했다.



 중관춘엔 투자도 넘쳐난다. 연간 6조원이 넘는 투자금이 중국 안팎에서 밀려온다. ‘한국의 테크노밸리’라는 경기도 성남의 판교테크노밸리 스타트업·벤처들이 투자자금에 목말라하며 서울 여의도까지 찾아가야 하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중관춘에서 성공한 기업은 또다시 중관춘 내 후배 벤처들에게 투자한다. 레노보 그룹 계열 벤처캐피널사 레전드캐피털이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현재 3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200개 이상의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총 투자액의 15%는 중관춘 벤처 몫이다. 레전드캐피탈에서 만난 한국인 파트너 박준성 상무는 “중국에서는 사람과 기술만 좋으면 투자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며“투자보다는 융자 위주, 창업자에게 무한책임을 물어 신용불량자를 만드는 창업자 연대보증 같은 것은 중국엔 없다”고 말했다.



 중관춘에서 만난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한국기업은 없었다. 칭화X랩의 마오둥후이(毛東輝) 집행주임은 “중국인들이 한류(韓流)를 좋아하긴 하지만, 중국기업이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중국 기업의 경쟁자는 구글과 같은 미국기업뿐”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추격’은 한국인들만의 얘기인 셈이다.



베이징=글·사진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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