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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 없는 금융이 'KB 막장' 불렀다

중앙일보 2014.09.16 02:26 종합 1면 지면보기
15일 오전 KB금융지주 이사회는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5월 KB금융 내분 사태가 표면화한 지 넉 달 만이었다. 2시간30분여 토론 끝에 이사회 발표문은 딱 두 줄이었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긴급 간담회를 열고 임영록 회장 거취 문제에 대해 토론을 했다. 다수의 이사는 조직 안정을 위해 임 회장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사회는 대표이사 선임과 해임을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분산된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견제·감시하라는 취지로 10명 중 9명을 사외이사로 채웠다. 그 대가로 올 상반기에만 1인당 평균 4140만원의 보수도 받았다. 그러나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의 수장이 사임하고 지주사 회장의 직무가 정지된 초유의 경영공백 상태에서 이사회는 ‘회장이 알아서 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실세 업은 낙하산 경영진
소신 감독 못 한 금융당국
거취 알아서 하라는 이사회
"관치금융 적폐 한계 왔다"

 소신 없는 금융당국의 갈팡질팡 행보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애초 금감원은 KB지주 내분이 표면화하자 곧바로 2주간 검사를 벌인 뒤 KB지주 경영진에 ‘중징계’를 사전통보 했다. 그러나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6월 28일 이후 여섯 차례나 회의를 열며 금감원 결정에 반기를 들자 최수현 원장은 최종 결정을 미루며 2주일이나 시간을 끌었다. 지주회사 회장에 대한 최종 징계권을 가진 금융위원회도 사태를 수수방관했다. 그 사이 KB지주 임 회장이 감독당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자 청와대 안팎에서 감독당국 문책론이 제기됐다. 그제야 금감원과 금융위는 부랴부랴 ‘중징계’와 ‘직무정지’ 등 초강수를 두며 KB지주 경영진을 압박했지만 이미 감독당국의 권위와 위신은 깊은 상처를 입은 뒤였다. 전직 금감원 관계자는 “지주나 은행에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다 보니 당국으로서도 소신껏 감독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리인’에 불과한 경영자와 제3자인 금융당국의 이전투구가 극한으로 치닫는 사이 정작 은행의 이해관계자인 주주, 고객, 직원들은 침몰하는 ‘KB호(號)’ 속에 갇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만 듣고 앉아 있는 형국이 됐다.



KB금융의 주가는 이날 지난 주말보다 5.22% 떨어진 3만9000원에 마감했다. 은행장이 사임하고 지주 회장의 직무가 정지된 초유의 경영공백을 우려한 주주들이 앞다퉈 주식을 내다 팔면서 벌어진 일이다. 은행 이사회는 3개월째 주전산기 문제에 매달려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LIG 손해보험 인수 같은 미래 수익원 확보를 위한 굵직한 현안들과 장기 전략 논의도 줄줄이 지연되고 있다.



 고객 동요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방의 한 지점장은 “지점을 찾는 고객들이 ‘은행이 왜 그리 시끄러우냐’며 불안해 하고 직원들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라고 우려했다. ‘외풍’이 잦아지면서 임직원들은 ‘본업’보다는 권력의 향배에 관심을 갖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분 사태가 한창일 때 임원은 물론 일반 직원들까지 온통 관심은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하나’였고, 노조도 비공식적으로 특정인을 겨냥해 강력한 제재를 요청해왔다”며 “금융회사가 아니라 마치 정치집단을 보는 듯했다”고 개탄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금융권 코드 인사, 대리인을 견제해야 할 금융당국의 소신 없는 눈치 보기, 그 틈을 파고든 ‘모피아’ ‘연피아’ ‘금피아’ 간의 패권다툼 등이 KB 사태를 낳았다. 금융계 안팎에선 KB지주 경영진 몇 명을 물러나게 하는 기존의 대증요법적 처방만으론 골병 든 한국 금융산업을 되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KB 금융 사태는 관치금융의 적폐가 한계상황까지 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감독·제재는 물론 금융산업 전반의 낡은 틀을 바꾸는 근본적 개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는 감독당국의 제재부터 기관과 관행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바꾸라는 주문도 나온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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