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B 막장극 주연·조연 10명 모두 모피아·금피아·연피아

중앙일보 2014.09.16 02:21 종합 8면 지면보기
지난여름 유럽과 미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금융 황제’가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 회장 보두앵 프로와 미국 은행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이 그 주인공이다. 프로는 10년 넘게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의 최고경영자와 회장으로 군림하며 ‘프랑스 최고 금융가’란 수식어를 달고 다닌 인물이다. 다이먼 역시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하고 JP모건을 미국 최대 금융회사로 키워냈다. ‘월가의 황제’란 별명이 그를 따라다녔다.


금융의 난파선, KB <상>
한국선 출신따라 손 잡았다가 정권 바뀌면 밥그릇 싸움
미국은 인맥 활용 걸리면 영구 퇴출 '관피아' 엄두 못내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잠적의 이유를 “건강상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국 정부가 이들 회사에 매긴 각각 100억 달러(약 10조원) 안팎의 징벌적 과징금 때문이었다. 지난해 벌어들인 순익을 고스란히 반납하게 되자 지난달 BNP파리바 이사회 내부에선 “프로가 연내 퇴진키로 했다”(블룸버그통신)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다이먼은 후두암 치료를 마치고 복귀하긴 했지만 후임자 하마평이 나올 만큼 회사 내 입지에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먹고 먹히는 살벌한 금융시장에서 10년 넘게 최고 자리를 지켜낸 프로와 다이먼 두 사람의 날개를 단번에 꺾을 만큼 미국 금융당국의 처벌은 서슬이 퍼렇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경영에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 질서를 위협한다는 판단이 서면 가차 없이 칼을 빼 든다. 조사는 집요하고 치밀하다. 과징금 같은 처벌 결정을 내리기까지 최소 3~4년간 조사를 펼친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에선 회사를 상대로 제재를 하기 때문에 어설프게 했다간 당장 소송이 들어온다”며 “마구잡이 검사나 제재는 상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도 은행은 주인이 없는 경우가 많다. 덩치가 워낙 큰 데다 공적 기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당국이 주주를 대신해 힘센 ‘대리인’의 전횡을 막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 “세계 최고의 갈취 집단”(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이란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금융당국과 법무부가 손잡고 강력한 제재를 고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당국의 감독과 제재는 이와는 거리가 있다. ‘손보기’식 인적 제재가 중심이다. 금융사 직원의 경미한 잘못까지 일일이 직접 제재한다. 반면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힘센 최고경영자에겐 눈치 보기가 일쑤다. 그러다 정권교체기만 되면 금융사 수장들의 제재 문제가 불거진다. 금융사 경영진 제재를 둘러싸고 정치적 논란이 단골처럼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KB금융이 대표적이다. 현 임영록 회장을 포함해 역대 수장 5명 모두가 제재를 받았다. 이명박(MB) 정부 4대 천왕으로 불리던 어윤대 전 회장도 피해가지 못했다.



또 다른 4대 천왕으로 꼽히던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정권 교체기에 물러나야 했다.



 인적 제재와 달리 과징금이나 기관에 대한 제재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러니 제재가 되풀이돼도 사람만 바뀔 뿐 정작 해당 금융회사의 잘못된 관행이나 구조는 고쳐지지 않는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KB금융 내분 사태가 ‘막장 활극’ 수준으로까지 번진 데도 이런 후진적 금융 감독·제재 시스템이 한몫했다”고 말했다. 금융 선진국에선 이사회도 거수기가 아니라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 등 에서는 금융사들이 실적이 좋지 않으면 이사회가 먼저 나서 해임한다. 이사들은 대부분 주주를 대변한다. 금융당국이 개입하기 전에 주주들이 나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국내 금융지주나 은행에선 사외이사와 최고경영자 사이에 짬짜미가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막강한 금융 권력에 견제가 없다 보니 이권 다툼이 벌어지는 건 당연하다. ‘모피아’ ‘금피아’ ‘연피아’가 출신 배경과 지연·학연을 바탕으로 손을 잡았다가도 볼썽사나운 밥그릇싸움 이 되풀이되는 이유다. 금융연구원 손 위원은 “선진국에선 재취업 후 감독기관에 근무할 때 알던 정보와 인맥을 활용하다 문제가 생기면 업계에서 영원히 퇴출될 정도로 일벌백계하기 때문에 ‘관피아’ 폐해가 거의 없다”며 “퇴직 공무원이나 정치권 주변 인물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선 강하게 제재해야 관치 적폐를 청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현숙·박유미 기자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