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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평양을 들여다보는 창, 중국대사관 홈피엔 무슨 일이 …

중앙일보 2014.09.16 01:58 종합 14면 지면보기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이 운영 중인 인터넷 홈페이지 메인화면.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고위인사를 접견하는 사진만 있을 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모습은 없다. [사진 주북중국대사관 홈페이지]


북한 내부를 은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평양 모란봉구역에 자리한 중국대사관이 운영하는 홈페이지(http://kp.china-embassy.org)입니다. 주로 영사업무와 북·중관계를 소개하려 만들었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유용한 북한 정보가 적지않습니다. 부임 4년째인 중국 외교가의 마당발 류홍차이(劉洪才) 대사 덕분이죠. 그는 그가 만난 북한 권력의 핵심 인사들과 방문지 소식을 사진과 함께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거기엔 미처 몰랐던 북한 주요인물의 직책 변동이나 얼굴 사진은 물론 최신 지역정보도 생생히 드러납니다. 대북 정보 관계자들조차 이 곳에서 가끔 ‘월척’을 낚는다고 합니다.

초기 화면에 3년 전 김정일 사진만
"혁명 계승" 김정은 환영하던 중국
잇단 미사일·핵 도발로 관계 꼬여
'전략적 가치' 의식 불만 표출은 안해



 그런데 이 홈페이지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집권 3년차를 맞았지만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존재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초기화면에는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10월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부총리(현 총리)와 만나는 장면이 실려 있습니다. 김정은에 대해선 ‘조선(북한)정치’란 항목에 국가원수임을 나타내는 ‘김정은 영도인(領導人)’이라는 문구가 전부입니다. 지난 7월 홈페이지를 개편했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이를 두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사실 최근 북한과 중국 사이엔 냉기가 가득합니다. 노동신문엔 요즘 ‘중국’이 없습니다. 15일자에 북한 정권수립(9·9절) 66주년을 맞아 해외 각국에서 열린 행사가 소개됐지만 옛 친구인 중국은 빠졌습니다. 그 빈 자리를 러시아가 차지합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축하전문을 3면 귀퉁이로 밀어버리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것을 1면에 전한 게 대표적입니다. 이쯤되면 ‘산과 물이 잇닿은 인방(隣邦)’이나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불리던 북·중 관계는 추억이 된 듯합니다.



 이달 초 북·중 국경을 취재한 일이 있습니다. 옌지(延吉)에서 만난 중국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조선반도 문제 전문가’라는 A씨는 “김정은이 내놓는 핵·경제 병진노선이란 게 다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갈합니다. 중국이 시도한 개혁 개방정책을 본받아 인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하면 식량난과 경제가 풀리는데 딴청을 부리고 있다는 겁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 지도부도 공개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못마땅해하는 정황이 역력합니다. 미국 하원의 에드 로이스 외교위원장은 지난 3월 언론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의 잦은 도발에 짜증을 내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당시 리커창 총리를 만난 직후라 중국의 의중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관측이 나왔죠. 올들어 중국이 대북 송유관 밸브를 잠가버렸다는 보도도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눈길을 끕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본래 이랬던 건 아닙니다. 정권수립 시기 북한과 중국은 김일성과 마오쩌뚱(毛澤東)의 친교를 토대로 혈맹을 맺었습니다. 마오 전 주석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은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했고, 평북 회창에 있는 그의 묘는 북·중 친선의 상징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수 차례 찾아 대사·직원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외교 의전상 파격행보죠. 만일 우리 대통령이 주한 미국대사관을 방문한다면 ‘친미 굴종’이라며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을겁니다.



 김정은도 중국 측의 두터운 후원에 힘입어 권력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26살에 불과하던 그가 2010년 9월 후계자로 지명되자 중국은 “조선혁명의 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됐다”고 환영했습니다. 국제사회가 북한 3대 세습에 비판의 날을 세우던 시점이어서 북한으로선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격이었죠. 김정일 사망(2011년12월) 후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 뒤에도 이런 우호관계는 유지됐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도발(2012년12월)과 3차 핵 실험(2013년2월)으로 북·중관계는 꼬여버립니다. 제멋대로 나가는데 심기가 불편해진 중국 지도부는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했죠. 북한은 “힘있는 유관국이 제정신을 못차리고…”라며 베이징을 향해 직격탄을 날려버립니다. 양국 관계의 치명상은 지난해 12월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겁니다. 사형 판결문엔 “나라의 지하자원을 외국에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친중(親中)의 죄가 덧씌워졌고, 장성택과 교분이 있던 중국 영도그룹은 분개했다고 합니다.



 물론 중국 지도부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만을 꽁꽁 감춥니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겠죠. ‘중국의 힘’을 의식한 김정은도 본격적으로 발톱을 드러내진 않습니다. 대신 푸틴의 러시아에 구애합니다. 당분간 우리는 반세기 전 펼쳐진 김일성식 중·소 등거리 외교의 설익은 버전을 지켜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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