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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운전과 식사가 문화로 된다는 것

중앙일보 2014.09.16 00:14 종합 32면 지면보기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올 추석 보름달은 유난히 크고 밝은 수퍼 문이라고 한다. 지구를 타원형 궤도로 도는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졌을 때 보이는 모습이기 때문이란다. 과학적으로야 어떻든 밝고 큰 보름달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연구년을 맞아 그동안 미뤄둔 책 쓸 자료를 싸 들고 초등학생 아들 하나 데리고 LA 근교에 박혀 있은 지도 여덟 달째. 몸도 마음도 약간 지쳤다. 이곳 한인 마트에서 파는 송편을 사다 먹으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그동안 책 읽고 글 쓰고 산책하는 걸 위안 삼아 나름 우아하게(?) 버텼던 여덟 달이 보름달과 송편에 딱 걸려서 스타일을 구겼다. 고향이라는 것, 그립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미국 생활과 한국에서의 일들을 이것저것 떠올려 보면서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일 거다. 여러 종류의 좋은 점과 나쁜 점들이 있고, 사람들의 경우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짧은 기간 동안 미국 사회를 알 수는 없을 거고 언제부턴가 우리보다 좋은 점, 아주 구체적인 것 두 가지만 배워 가자고 생각했다. 하나면 좀 아쉽고, 셋 이상은 찾기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랄까. 모든 일에는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운전 문화다. 이곳 사람들은 길거리 곳곳에 있는 ‘스톱’ 표지판 앞에서는 무조건 차를 세운다. 잠시 멈추면서 앞과 좌우에 먼저 온 차를 보낸 후에 다시 출발한다. 우리 식의 고속도로인 프리웨이에는 카풀 레인이라는 게 있다. 두 사람 이상 탄 차만 달려야 하는 차선인데 차가 아무리 막혀도 신통하게 어기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 규칙을 어기면 벌금이 최소 341달러(대략 35만원)라고 세워둔 안내판 덕분일 수도 있다. 방법이야 어떻든 이런 규칙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문화라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차선을 잘못 들었다 싶어 오른쪽 깜박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려는 순간 오른쪽 차선 뒤쪽 멀리 있던 차가 달려온다. 그 뒤에 있던 차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그런 적이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양보한다는 것을 지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곳곳에 만연해 있는 경쟁심리가 이런 일에서까지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첫 번째 다짐은 쓸데없는 곳에 경쟁심 낭비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양보한다는 게 꼭 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운전도 문화가 되어야 하니까.



 다른 하나는 기다림에 익숙하다는 거다. 몇 달 전 이 칼럼에서 미국에서 겪는 불편함 중에 느리다는 것을 꼽았는데, 빠름에 익숙한 필자에게는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줄 서서 기다리는 것에 참 익숙해져 있다. 관공서나 은행에서 일을 볼 때나, 수퍼마켓 계산대 앞에서나, 심지어 식당에서도 앞사람이 아무리 시간을 끌어도 재촉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는 게 참 신기해 보인다. 내가 기다린다는 것과 남을 기다려주는 것이 습성화되는 것,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 이 정도라면 이것도 문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서울 시내 한복판 북새통 식당의 점심 때. 내 돈 내고 먹는데 주인이 정해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자리 잡고 앉아서 10분쯤 지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리 주세요!”라고 재촉한다. 그러고도 10분이 더 지나면 “대충 주세요!”라며 짜증을 낸다. 이렇게 점심을 먹고 나올 때, 때우고 나왔다는 생각만 드는 식사 문화. 정말 대충 먹고 싶었을까? 얻어먹는 기분과 북새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을 거다. 그래도 앞으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은 품위 있는 척도 하면서 대충과 빨리라는 말도 하지 않고.



 운전하면서 보내는 시간과 식사하면서 부대끼는 시간에서 받는 스트레스만 없어도, 그런 일들이 조금 여유로워지고 문화가 된다면 우리네 삶이 한결 편해지지 않을까? 내년에는 내 나라의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이 두 가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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