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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말 이석기의 RO는 조직이 아닐까?

중앙일보 2014.09.16 00:06 종합 33면 지면보기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국가안보법)
이석기 RO(Revolution Organization)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나올지 관심이다. 지난 8월 11일 서울고법 형사9부(이민걸 부장)는 현직 국회의원 이석기 내란 사건에 대해 RO의 실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RO의 파괴 목표물이 KT 혜화지사, 분당의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경기도 평택 물류기지였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이 시설들은 통신·연료의 국가 핵심 인프라로 이를 파괴할 경우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하다.



 서울고법은 총책인 이석기가 연대조직을 빨리 꾸리고, 광우병 사태처럼 선전전을 실시하며, 군사시설 정보를 수집하라는 조직 차원의 전쟁 대비 3대 지침을 하달했다는 것도 인정했다. 압수·수색을 당할 경우에는 USB를 삼켜버리고, 경기도에 비밀 은신처를 물색하고, 10만원 정도의 현금을 항상 소지하라는 도피지침도 인정했다. 회합 참석자들은 지침에 따라 북한의 전쟁영화인 ‘월미도’(1982)를 보며 북한에 충성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들어 재판부도 폭력혁명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지하혁명 RO조직이 존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결성 시기, 조직체계, 회합 참석자 130여 명의 가입 시점, 이들이 지침에 따라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RO를 조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사실 재판부도 시인했지만, 이 사건은 내란죄가 성립하느냐가 주된 쟁점이며 RO가 조직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본질이 아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적극적으로 RO가 조직인지를 판단했다. 재판부의 RO에 대한 인식은 범죄 성립과 형량에 영향을 미쳤고, 향후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 논쟁과도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인권을 강조한 듯한 재판부의 시각은 학문적으로는 더 커다란 인권을 놓친 냉전적 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는 RO의 조직성 판단을 위해 주로 과거 대법원 판결을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냉전이 종식된 1991년 전까지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주체는 주권국가였다. 주권국가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총과 대포를 겨누면서 서로를 위협했다. 따라서 냉전시대에는 적국과 내통해 지령을 하달 받고 공작금을 수수하며 난수표를 지참하고 의사 전달을 주고받는 조직의 존재가 중요했고 그 실체는 명백했다.



 하지만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과 전 세계를 이웃으로 묶어버린 인터넷 세상은 글로벌 안보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그 결과 오늘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주체는 적대국이나 적성국과 명백하게 연결된 조직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용어는 냉전시대 그대로의 조직이지만 위협 유형과 활동을 전혀 달리하는 신흥조직이 나타난 것이다. 국가정보학에서는 이를 ‘초(超)국가적 안보위협세력’이라고 호칭한다.



 게다가 사이버 세계의 등장으로 폭력·파괴·선동·선전 등 행동 유형은 더 늘어났고 다양해졌다. 과거에 비해 위장하기 쉬워졌고 적발될 위험은 작아졌지만 파괴 효과는 오히려 커졌다. 국가 전복을 위해 많은 인원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강령이나 규약 같은 형식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결과로 말할 뿐 특정 국가나 세력과의 명시적인 연계는 위험을 자초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은 대개 무기도 사전에 준비해놓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릿속의 동질적인 이념과 사상일 뿐이다.



 따라서 법원과 수사·정보 기구는 법조문이나 기존의 판례를 아무리 세밀하게 분석한다고 해도 이들 초국가적 안보위협세력 조직의 실체와 전모를 파악하긴 어렵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 개인이 주권국가를 괴멸할 수도 있는, 이른바 ‘외로운 늑대’(lone wolf)다. 외로운 늑대는 평범한 시민처럼 보이지만 이념과 사상을 달리하는, 걸어 다니는 핵폭탄이다. 9·11 테러 공격 이후에 미국 의회가 제정한 애국법이나 정보개혁 및 테러방지법이 대상으로 하는 세력이 바로 외로운 늑대다.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 시대에 맞춰 진화하는 위협세력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올바른 법률 판단을 하고 합당한 형량을 산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미국 등 안보 선진 국가들이라면 우리 법원에서 인정한 사실만으로도 이석기 RO를 매우 위험한 조직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안보는 결코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국가를 전복하려는 망상을 가진 세력에겐 매우 관대하고, 오히려 자유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권력은 과거의 잣대로 불신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하다.



 국가안보는 결코 제3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국가와 구성원 모두가 소홀히 해선 안 되는 기본적인 책무다. 국가를 파괴하려는 일부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대다수 선량한 일반시민의 더 큰 자유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국가안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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