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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강성현] 고홍명(辜鴻銘)과《중국인의 정신》이해

중앙일보 2014.09.15 10:20
고홍명(1857~1928)은 ‘변발(?子) 교수’, ‘광인 선비(狂士)’, ‘괴걸(怪傑)’로 불린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오랜 기간 유학생활을 했지만, 변발과 구식복장을 고집하였다. 루쉰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돼지 꼬리’같은 변발을 앞 다퉈 잘라버리고 양복을 입을 즈음이었다.



고홍명이 어느 날 변발을 늘어뜨린 채 강의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배꼽을 틀어잡고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철부지 학생들에게 그가 일갈하였다.



“나는 눈에 보이는 변발을 하였지만, 제군들은 가슴 속에 무형의 변발을 하고 있다네(我頭上的?子是有形的,??心中的?子却是無形的).” 그러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그는 한 평생을 ‘앵글로 색슨 관념’과의 전쟁을 벌였다. ‘푸른 눈’의 잣대로 중국을 재단하려는 행태를 온 몸으로 거부한 것이다. 청말 민초에 6개 국어를 구사하며, 동서양의 학문을 자유롭게 넘나든 그의 지성은, ‘오만한’ 서양인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였다.



고홍명처럼, 노골적이며 편집광적으로 ‘중국, 중국인’을 뜨겁게 사랑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는 화교인 아버지와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알았으며, 부친 또한 영어, 말레이어, 민남어(?南語, 푸젠성福建省 방언)에 능숙하였다.



조상들의 고향은 푸젠성이며,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말레이시아의 섬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탕생(湯生)이었다. 아버지는, 영국인 브라운이 경영하는 말레이시아 고무농장 관리 책임자로 일했다. 자녀가 없던 브라운 부부는 이해력과 기억력이 비상한 고홍명을 양자로 삼았다. 열 살에 양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찍부터 어학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말레이어, 영어, 독일어, 불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익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애딘버러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뒤 이어, 라이프찌히 대학과 파리 대학에서 문학, 철학, 법학 등을 공부하였으며, 14년 만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중체서용(中體西用)을 부르짖은 양무파 대신, 장지동(張之洞, 1837~1909)밑에서 20 년 동안 통역관 겸 비서를 지냈다. 아울러, 중국문화, 중국고전 연구를 병행하였다.《논어(The Discourses and Sayings of Confucius)》,《중용(Conduct of Life)》,《대학(The Higher Education)》등을 영문으로 번역해 서방에 전파하였다.



상해 남양공학(상해 교통대학의 전신)의 감독(교장)과 북경 대학 영문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향년 72 세로 타계했다. 중국문화와 중국인의 참모습을 서방에 전파하려 애쓴 치열한 삶이었다.



루쉰하면《광인일기》? 《아큐정전》이 떠오르듯, 고홍명을 얘기할 때《중국인의 정신, The Spirit of the Chinese People, 원명 춘추대의春秋大義》을 빼놓을 수 없다. 고홍명이 영문으로 쓴 이 책은 1915년에 출간됐으며, 곧 바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중국인의 정신》은 부경대 교수, 김창경이 번역?하여 고홍명과 ‘중국, 중국인’ 이해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중국인의 정신》에는 <중국인의 정신>, <중국 부녀>, <중국 언어>, <중국의 존 스미스>, <위대한 한학자>, <중국학 1,2> 등을 포함하여 모두 8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서구인의 관념’이 지배하던 당시에, 중국의 진면목을 널리 알리려 했던 그의 오랜 사색과 결단의 산물이다.



고홍명이 주장한, ‘중국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키 워드를 집약하면 다음과 같다.



충, 효, 예, 의리, 염치, 온화, 우아, 정절, 무욕, 희생, 심오, 질박, 침착, 평온, 동정심, 정 감, 장중, 명분 등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진정한 중국인’, ‘중국 여성’, ‘중국 언어’ 이다. 그는 진정한 중국인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과 성인의 지혜를 지니고서 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다.” 그는 공자를 진정한 중국인으로 받들었다.



이어, 중국의 여성관에 대해 피력했다. 이상적인 중국 여성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품행, 말씨, 용모, 일(女工) 등을 제시했다. 중국 부녀자의 목표는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로 사는 데 있다고 하였으며, 이상적인 여성상을 가정주부에서 찾았다. 진정한 아내는 남편에게 충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희생적이고 무욕적인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고 하였다.



중국 언어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중국 언어>의 일부를 요약해 옮겨본다.



“중국어 구어는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언어와 비교해 볼 때, 말레이어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쉬운 언어라고 생각한다. 구어(白話文)는 격과 시제, 규칙과 불규칙 동사가 없어서 어떠한 규칙에도 속박당하지 않는 질박한 언어다. 오히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이 더 쉽게 구어를 읽힌다. 중국어 구어는 동심(童心)의 언어이므로 동심으로 돌아가 배워야 한다.



(…) 중국어는 영혼의 언어이자, 시적 언어다. 문언문(文言文)은 언어 자체가 심오하고, 심층적인 정감을 간결한 어투로 표현하기 때문에 어려우며, 천박한 무리들이 심오한 중국어를 배우기 힘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고홍명 저, 김창경 역,《중국인의 정신》, 133~139).”



한편, <중국의 존 스미스>와 <위대한 한학자>, <중국학 1> 에서는, 어설픈 중국어와 중국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가지고 펜을 ‘마구 휘두른’ 이방인 선교사, 학자들을 풍자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존 스미스’란, 중국인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앵글로 색슨의 관념으로 중국인의 성격을 개조시키려 한 앵글로 색슨족의 후예를 가리킨다.



그의 주요 공격 대상은, 25년에 걸쳐 유교 경전을 번역한 제임스 레그(James Legge, 1814~1897),《중국문학사》,《중영사전》등을 편찬한 자일즈(H.A.Giles, 1845~1935),《중국인의 특성, Chinese Characteristics》을 지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아더 핸더슨 스미스(Arthur Handerson Smith, 1845∼1932) 등이었다. 문외한, 선무당들이 중국인, 중국문화를 자의로 해석하여 망쳐 놓았다며 격한 반응을 일으켰다.



참고로, 스미스가 기술한 스물여섯 가지 ‘중국인의 특성’ 가운데 그 일부를 소개한다.



강인한 생명력, 근검절약, 예의 바름, 효도, 선행심, 지나친 체면치레, 시간관념 결핍, 정확성 결여, 오해를 잘하는 천성, 빙 둘러 말하기, 완고함, 무딘 신경, 외국인 멸시, 공공심 결여, 수구적 태도, 쾌적함과 편리함을 강구하지 않음, 시기와 의심, 성실과 신용의 결여 등



고홍명은 스미스와《중국인의 특성》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더 스미스 목사는, 영국의 존 스미스가 중국인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책을 썼다. 그는 존 스미스들의 친근한 벗이 되었고, 그가 쓴《중국인의 특성》은 존 스미스들의 성경이 되었다(위의 책, 145쪽).”



<중국의 존 스미스>에는 ‘중국인 존’도 등장한다. 고홍명에 의하면 중국인 존은, ‘앵글로 색슨 관념으로 개조돼 정신착란을 일으킨 중국인’을 지칭한다. 이른바 ‘서양물’을 먹은 인물들을 정신착란자로 매도하였으니,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홍명이 서구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준엄하다.



“현재 유럽 문명은 파산에 직면해 있지만, 중국은 그 가치를 점칠 수 없고 의심할 여지없는 놀라운 문명적 자산을 지니고 있다. (…) 여기에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중국 문명의 보고는 바로 중국인이란 점이다. 진정한 중국인이 바로 문명적 자산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중국인은 큰 출혈 없이 질서 있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내가 유럽인과 미국인에게 분명히 경고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문명적 자산을 파괴하지 말고, 아울러 진정한 중국인을 개조하거나 짓밟지 말라는 것이다(위의 책, 40).”



고홍명은 중국인과 중국문명의 특징으로 ‘심오’, ‘박대(博大)’, ‘순박’, ‘영민(靈敏, Delicacy)’을 꼽았다. 영국인, 미국인, 독일인이 갖추지 못한 이러한 네 가지 특징을 오직 중국인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며, ‘중국인 예찬론’을 편 것이다.



영국인이 앵글로 색슨족에 대한 자부심을, 독일인이 게르만 민족에 대한 우월감을 드러내듯, 그 또한 아래의 글처럼 중국인의 순수성을 과시하는 우(愚)를 범했다.



“유럽인이나 미국인의 인간성을 진정한 중국인의 그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은 많은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위의 책, 41).”



‘중국의 존 스미스’를 비판하면서, 고홍명도 은연중 ‘중화 우월주의’의 시각으로 서구를 평가하려는 ‘미국의 왕 서방’이 돼버린 것 같다.



그는 당시, 서양인이 신뢰하는 대표적인 중국 지성이었지만, 나라 안에서는 공자 추종자, 유교 신봉자, 황제체제를 고집하는 복벽(復?)주의자로 매도당했다. 기행과 파격, 궤변, ‘고루한 사상’ 고집 등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과 중국문화를 준거로 콧대 높은 서양인을 호되게 꾸짖은(痛罵) 이 ‘괴짜 양반’을, 중국의 후세들은 ‘진정한 중국인’의 표상으로 추억한다. -끝-



전 웨이난(渭南)사범대학 교수 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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