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새정치민주연합은 콩가루 집안이나 다름없다.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두 차례나 폐기하고, 안경환·이상돈의 비상대책위원회까지 좌초시켰다. 야당은 이명박을 2MB(메가바이트)라 비하했지만 자신의 기억용량은 얼마나 될까. 불과 1년9개월 전 대선 패배조차 싹 잊은 느낌이다. 그 반성문인 ‘민주당대선평가보고서’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18대 대선은 보수와 진보의 총력전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영남 유권자 1059만 명>호남 414만 명)’에 맞서 PK 후보를 냈고, 후보 단일화에다 높은 투표율(75.8%)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졌다.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한마디로 실력이 달렸다.”
여기서 나온 게 “선명 야당에서 대안 야당으로, 투쟁에서 실력으로!”라는 교훈이다. “민생을 외면한 채 이념논쟁, 계파갈등, 대결정치에 주력한 게 패인(보고서 326페이지)”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 야당은 이 처방전을 제대로 따르고 있을까. 오히려 거꾸로다. 다시 친노·486 운동권의 투쟁 본능이 도지고 있다.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구도,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이분법, 야권 연대·후보단일화 만능주의에 빠져 아스팔트로 달려나가 단식·농성 중이다.
야당은 언제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했다. 그나마 김대중은 DJP연합, 노무현은 수도 이전으로 충청 민심을 끌어당겨 이를 극복했다. 하지만 지금 야당을 향해 또 하나의 암울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덮치고 있다. 바로 50대 쓰나미다. 지난해 58년생 개띠들이 대거 퇴직했다. 올해는 59년생들이 밀려난다. ‘베이비 부머’들이 두툼한 보수층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20~40세대와 50세 이상 유권자는 60대 40이었다. 이 비율이 2020년엔 52대 48, 2030년에는 43대 57로 완전히 역전된다. 이런 연령효과가 가져올 정치적 함의는 무시무시하다.
야당은 일본 사회당의 몰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당은 ‘잃어버린 20년’에 돌입한 1996년 선거에서 완벽히 무너졌다. 그해는 바로 ‘단카이(일본 베이비 붐) 세대’의 본격적인 퇴장 시기와 겹친다. 일본 열도의 총보수화는 경제팽창기보다 오히려 저성장기에 더욱 두드러졌다. 유권자 사이에 나빠져 가는 경제 현실을 바꾸기보다 현상유지라도 원하는 생활보수주의가 보편화된 것이다. 이런 변화에 둔감한 채 서구의 좌파보다 더 선명한 투쟁노선을 밟아온 사회당은 정치판에서 완전히 증발돼 버렸다. 일본은 이후 보수 양당제가 됐다.
현재 야당의 지지율은 고정적 진보층인 30%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사실상 법정관리에 들어갔는데도 회생은커녕 남은 당권이라도 차지하려는 골육상쟁이 한창이다. 야당이 앞날을 내다본다면 권은희 대신 빅 데이터 전문가, 글로벌 경제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을 삼고초려해 전략공천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언제까지 정부 실패의 반사이익만 챙길 것인가. 관성적인 국회 사보타주도 언제까지 통할지 궁금하다. 차라리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 현 정부와 70% 이상 닮은꼴인 복지정책과 증세 등에 앞장서는 과감한 역(逆)발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꾸 야당이 일본 사회당과 똑같이 제 무덤을 파는 느낌이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